[이백순 칼럼] 효과도 못보고 제재카드만 남발하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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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2-01-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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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1993년 북한 핵문제가 처음 불거진 이래로 우리는 제재(sanction)라는 단어를 빈번히 접해오고 있다. 북핵 위기 이후 이란도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면서 양국에 대한 제재가 우리 언론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란이 우리나라에 원유를 수출한 대금 약 70억불을 미국 제재로 인하여 지불이 중단되면서 양국간의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했다. 그런데 더 심각한 일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중간 전략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기업에 대해 첨단기술을 이전 하거나 투자를 하는 한국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 점이다. 게다가 최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하여 러시아가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양국간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런 제재들이 시행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대중, 러시아 교역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적잖이 우려스럽다.
 
이처럼 미국이 제재를 외교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이 그만큼 쇠퇴를 꼽을 수 있다. 과거 미국의 국력이 막강하였을 때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도전을 하는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소위 미국의 시각에서는 권위주의 국가군 또는 과거 표현으로는 ‘악의 축’ 세력이 강해지고 있어 미국이 이들을 억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미국의 군사력이 막강하여 이런 도전국가들의 행위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 조치나 다른 강압적 조치로 저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가 약화되어 이들을 쉽게 저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적 협상을 통해 도전국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타협할 의지도 없는 상태이다. 즉 군사적 해결방안은 힘에 부치고 외교적 타협은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우니 미국은 그 중간계책인 제재를 외교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본래 제재는 본질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외교적 해결을 위한 보조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 제재는 개념 정의상 ‘제재를 부과하여 제재 대상국에 경제적, 심리적 압력을 가함으로써 그 국가의 행태를 변경’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즉, 제재를 통하여 제재가 가해진 나라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거나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없음을 알고 그 행동을 중단해야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미국이 부과한 제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제재를 통하여 상대편의 행태를 변경시키는데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 북한은 물론이고 이란도 미국의 제재로 인하여 핵개발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국은 제재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시간도 벌어가며 핵개발을 지속시키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였을 때 미국이 이 나라들에도 제재를 가하였으나 이들은 제재를 무릅쓰고 결국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처럼 제재가 실질적 효과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제재를 계속 빈번히 외교적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제재의 또 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제재는 상대국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실질적 효과보다는 이들 국가에 대해 자신들의 행태가 국제질서를 깨트리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징벌적 효과는 있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이런 국가들의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에 대한 무엇인가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제재를 취하는 것이고 이런 제재는 국내 정치적으로 상징적 효과는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 핵위기가 시작된 이래로 유엔을 통하여 11개의 제재를 북한에 부과하였고 미국 국내법에 의거한 제재도 중첩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부과된 유엔결의 2973호 제재는 사상 최강의 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로 강력한 제재였다. 그러나 그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것을 제재로는 막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이후 미국은 다시 제재를 추가하였다. 이처럼 제재 숫자가 세기 힘들 정도로 늘어간다는 것은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이는 결국 제재의 효과는 국제적이 아니라 국내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강경세력들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어떻게든 응징을 하여야 하겠으나 다른 수단이 없으니 제재부과로 심리적 만족을 얻는 것 이외 다른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제재가 북한이나 이란 등에 경제적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중요한 것은 이 제재만으로 이들의 비핵화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2018년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테이블로 나온 것을 제재의 효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당시 북한은 핵무력을 완성하였다고 공언한 후 다음 수순인 경제재건을 위하여 대외여건 개선이 필요하였기에 스스로 협상의 장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제재로 인하여 협상에 나왔다면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로 경제적 어려움이 훨씬 가중된 현시점에서 북한은 협상장으로 달려 나와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은 미국이 다른 유인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협상장으로 나올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보상을 해줄 수는 없다는 명분론도 있지만 유인책을 암시하며 대화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도 끌어낼 수도 없는데 제재를 통해 북한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간의 경험칙에 반하는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그리고 북한이 상당한 비핵화를 이룬 후에 그 보상으로 제재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입장도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내기는커녕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도 힘들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해야 타협이 가능하다. 북한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나라를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면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제재에만 의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미봉책이자 지연책에 불과하여 문제를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제제는 도발에 대응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뭔가를 했다는 외교적 흔적을 남가는 것 이외 큰 실효성은 없다.
 
이제 미국은 크게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작게는 북한,이란,미얀마등 여러 나라로부터 외교적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도전을 제재로만 틀어막는데 한계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외교와 경제도 많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외교평론가 월터 미드(Walter Mead)도 “미국이 허풍 섞인 제재를 가하는 습관은 다른 나라들을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 ”미국이 되돌아왔다“ 라고 했으나 외교적으로 아직 굳건히 돌아온 모습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아프간을 떠나는 미군 모습이 세계인의 뇌리에 박혀있다. 미국이 좀 더 적극적인 외교, 현실적인 인식으로 되돌아와서 미국이 지도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강력한 제재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적 노력과 함께 사용할 때 효과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제재에만 의존하고 외교적 해결을 회피하면 미국의 지도력은 더욱 쇠락할 것이다. 제재 엄포만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대외신인도가 더욱 손상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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