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언어…'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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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2-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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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CJ ENM]


"아주 섹시하고, 변태적이야."

영화 '헤어질 결심' 시사회를 마치고 극장을 나서던 동료가 남긴 감상평이었다. "이게 호평이야 혹평이야?"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도 전적으로 동의했으니까.

돌이켜 보면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은 대개 그러했다. 관능적이면서 동시에 변태적인 데가 있었다. 영화의 분위기는 관능적이지만 만듦새를 하나씩 뜯어보면 '변태'라고밖에 정의할 수 없는 정교함과 집착이 있다. 하나의 건축물처럼 정교하게 설계돼있고 견고하게 쌓아놓았으며 빈틈없이 치장돼있다. 캐릭터나 이야기는 물론 벽지, 찻잔 하나하나까지 그의 계산 아래 존재한다.

박 감독의 영화가 고전적이고 마니아적인 인상을 풍기는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영화 학도와 영화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그의 작품은 몇 번이나 곱씹어도 새롭게 발견되는 데가 있다. 때마다 '아니 어떻게···' '아니 왜 저렇게까지···' 라며 관객을 충격에 빠트리는 디테일 말이다. 물론 그 점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CJ ENM]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맡게 된다. 그는 사망자(유승목 분)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의심하고 그를 심문한다. 산 타는 일에 능했던 남편이 끔찍하게 죽음을 맞았지만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마침내 그가 원하던 죽음을 맞았다"고 말하는 '서래'가 이상하게 여겨진 것이다. '해준'은 '서래'의 몸에 남은 학대의 흔적을 찾아내고 점점 더 의심을 키운다.

'해준'은 매일 밤 망원경으로 '서래'를 지켜보며 그의 곁을 맴돈다. 멀리서 지켜본 '서래'는 안쓰럽고 지독하며 아름답다. '해준'은 '서래'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안갯속에 갇힌 '해준'은 더는 진실을 볼 수 없다.

한편 '서래'는 완벽한 알리바이로 경찰의 의심을 잠재운다. 요양보호사인 그는 남편의 사망 시간, 할머니를 돌보고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마침내 '해준'은 의심을 거두고 가슴 한쪽에 싹트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로 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CJ ENM]


영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과는 결이 다르다. 그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로 관객을 홀린 반면 '헤어질 결심'은 모든 자극 요소를 지워, 되려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자 한다. 자극적인 행위나 직접적 대사 없이 '파도'와 '안개'처럼 밀려들고 관객들을 영화 한복판으로 이끈다.

박 감독은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표현이 노골적이지 않기를 바랐다. 손짓, 눈빛에 의미를 담고자 했고 말, 행동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관객들이 온전히 집중하게 하려면 자극적인 요소를 지워야 했다. 섹스, 폭력은 워낙 자극적이라 장면이 지나간 뒤에도 잔상이 남지 않나. 그런 요소를 지우고 (극 중 인물들이) 감춘 속마음을 유심히 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광기마저 덜어낼 순 없었다. 광적이고 집요한 성격은 영화의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쓰이게끔 하지 않았다. 온도, 습도, 조명, 냄새까지 함께 느끼게끔 하고 마침내 관객들이 점차 영화 속으로 빠지게끔 설계했다.

'헤어질 결심'이 박 감독의 전작과 다른 결을 만드는 데는 장르적 요소, 인물의 감정선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50%의 수사드라마와 50%의 로맨스로 이루어져 있다"는 박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이야기를 분배한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장르와 정서로 관객들을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CJ ENM]


앞서 언급한 대로 박 감독은 모든 장면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 개인적으로는 카메라의 시선이 흥미로웠는데 마치 영화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극 초반 거리를 두고 '서래'를 관음 하듯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점차 인물에 가까워지고 '해준'과 '서래'를 밀접하게 담아낸다. 영화 후반에는 다시 이들을 멀리 보는 데 관음적이거나 밀접하지 않고 담백한 관찰자처럼 지켜본다. 영화의 서사와 이들의 관계성을 '눈'으로 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헤어질 결심'이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건 고전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한몫한다. 배우들의 기질을 작품에 잘 반영한 덕이다. 박 감독은 두 배우를 "고전적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는데 캐스팅 후에 시나리오를 집필해서인지 캐릭터에 배우들의 모습이 많이 묻어난다. 박 감독의 눈으로 본 탕웨이, 박해일과 이들의 영화적 해석이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헤어질 결심' 속 캐릭터들은 박 감독의 취향에 따라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성격을 가졌다. "히스테릭한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고백한 그는 이들을 곳곳에 배치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하고, 시도때도 없이 감각을 자극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사진=CJ ENM]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임수정, '박쥐' 김옥빈, '아가씨' 김민희·김태리가 그렇듯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 역시 기존 한국 영화에서 만날 수 없었던 '뉴 타입'(New-type)의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여자. '서래'가 있었기에 '헤어질 결심'은 더욱 완전한 결말을 맺는다. 그는 파멸적 사랑을 선택했고 '해준'의 남은 인생을 완전히 지배한다. '미결'로서 관객에게도 지독한 잔상을 남길 캐릭터다.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국내 개봉했다. 관람 등급은 15세, 상영시간은 138분이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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