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아시아 용' 홍콩의 추락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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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입력 2024-07-0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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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홍콩 무술영화를 좋아하고 흉내 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노란 운동복을 입고 쌍절곤을 휘두르며 “얏, 호이”라고 기합 소리를 내는 홍콩의 액션스타인 이소룡을 따라 한다. 이소룡은 당시 청춘들의 절대 우상이었다.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학생을 생각하면서 사연을 담아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띄우는데 신청곡은 홍콩의 여가수 진추하가 부른 ‘One Summer Night’였다. 이소룡의 뒤를 이은 취권의 성룡, 중경삼림의 양조위와 임청하, 그리고 천녀유혼의 장국영과 왕조현, 영웅본색, 첨밀밀의 장만옥과 여명 등이 출연한 당시의 홍콩영화는 세련되고 앞선 영상문화와 분위기로 우리들을 열광시켰다. 홍콩 느와르(noir) 영화인 영웅본색에서 성냥개비를 물고 쌍권총을 쏘는 주윤발, 열화전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유덕화는 요즘 말로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아이콘들이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은 한국에서 먼 지역이지만 영국령 홍콩은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잘 융·복합된 새로운 문화의 도시라서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홍콩이었다. 홍콩이라는 도시 이름은 지명이므로 고유명사이다. 그러나 홍콩은 일반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비속어이지만 무슨 극히 좋은 일이 생기면 ‘홍콩 간다’는 말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홍콩영화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시대의 홍콩과 홍콩영화는 우리의 기억 속에 편린으로 남았다.
 
1997년 7월 1일을 기하여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간다. 영국과 중국은 1984년 중·영 공동성명(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을 통해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고, 50년 뒤인 2047년까지 '일국양제, 즉 한 국가 안에 두 개의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원칙’에 따라 홍콩에 자치와 행정권을 보장한다고 하였다. 역사의 그날, 홍콩에 주둔하던 영국군은 철수했고,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입성하였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내려졌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올라갔으며, 홍콩은 ‘홍콩특별행정구’가 되었다. 당시에 홍콩은 일국양제를 보장하는 중국을 믿을 수 있다, 믿어도 된다는 사람들과 믿을 수 없어서 캐나다나 호주 등지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혼돈의 사회였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근세기에 치욕적인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하여 잃어버린 홍콩이라는 자식이, 100년도 더 지나 부자로 성장하여 다시 부모의 품에 돌아왔다고 환영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이나 홍콩 사람들은 과연 중국의 약속을 믿어도 될지, 특히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불안해하였다. 반환 이후 홍콩은 서서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중국화가 되기 시작하였고, 동아시아에서의 무역, 경제 허브로서 홍콩의 역할도 점점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2014년과 2019년에 있었던 홍콩민주화운동은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면서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 반환 이후 수십 년간 사람이 떠나고 돈이 떠나가기 시작하더니 엑소더스(exodus)가 일어났다.
 
하나의 국가나 지역을 지배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나 이데올로기가 바뀜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통째로 바뀌어버리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홍콩이 그러하다. 이제는 홍콩이 더 이상 과거처럼 쇼핑과 관광의 천국이 아니다. 과거 중국 전체를 상대하던 도시국가 수준에서 이제는 중국의 변방 도시가 되었다. 필자도 홍콩 반환 시기부터 업무차, 또는 학회 참석차 자주 홍콩을 방문하였다. 과거부터 홍콩에서는 영어와 중국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홍콩은 필자의 전공인 번역학의 연구 자료에 있어 보고(寶庫)이다. 필자는 방문할 때마다 과거 홍콩의 위상이 점차 추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대만과 홍콩에서 사용하는 한자는 중국과 다르다. 중국에서는 한자를 간략하게 변환한 간체(簡體)를 사용하고, 대만과 홍콩에서는 한국과 같이 번체(繁體)를 사용한다. 최근 중국의 간체와 대만, 홍콩의 번체 사이에 그 정통성을 두고 ‘번간지쟁(繁簡之爭)’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 홍콩, 대만을 퉁 쳐서 중국, 중국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대만과 홍콩 사람들은 딱 잘라 중국과 구분 짓는다. 필자가 국내외 학회에서 만나는 홍콩이나 대만 사람들에게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중국인이라고 하지 않고 각자 대만인, 홍콩인이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획일화하여 묶어두려고 하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국, 대만,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렀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말이 사용되지 않는다. 고어(古語)가 되었다. 한국은 큰 용이 되어 진작에 등용문을 통과하였다. 지나고 보니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한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대만도 고만고만하게 성장하였고, 싱가포르는 홍콩이 혼란한 시기에 글로벌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본사를 대거 이전하면서 더욱 기업 하기 좋은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한국은 경제라면 경제, 문화라면 문화, 군사력이라면 군사력의 측면에서 급성장하였다. 한국은 절대 빈곤의 시대에서 산업화를 거쳐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성공 국가이다. 이제는 G7과 G8 사이에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말도 들린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는 말이 있다. 생물들이 각자의 계통에서 진화를 거치면서 변화되어온 모든 과정은 한 생명체가 수정되고 태어나서 자라는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이 말에 적용하고 싶다. 다른 선진국들이 수백 년 동안 겪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통하여 불과 몇십 년 만에 달성하였으니 말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혁명에 위협이 되기는 하나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계급이나 집단을 가리키면서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우리는 값진 민주주의와 자유 정신으로 이룩한 우리의 발전과 성과에 만족하되 홍콩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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