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총수들은 최장 9일 이어지는 설 연휴 국내에서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통상 전략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해외 리스크를 점검하고, AI(인공지능) 시대 새 먹거리 찾기와 내수 둔화에 따른 생존 경쟁 등 산적한 과제 해법 마련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20일 재계 관계자는 "연말부터 이어진 소비둔화, 경기침체 분위기와 더불어 탄핵 정국, 트럼프 2기 출범 등 국내외 비우호적인 경영 변수가 산적해 위기감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총수들도 해외 출장보다는 조용한 연휴를 보내며 올해 경영계획을 가다듬는 시간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매년 설 연휴 현장을 찾아 대외 메시지를 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에는 '침묵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합병, 회계부정' 항소심 사건 선고를 앞두고 있는 만큼 대외적 행보에 적극 나서기보다 법원 결과를 차분히 기다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2014년부터 매년 명절마다 국내외 현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해왔다. 지난해 설에는 말레이시아 삼성 SDI생산법인을 찾아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해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 임직원들에게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자"고 격려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트럼프 2기에 따른 해외 판매망 점검과 수출 전략을 구상한다. 앞서 발표한 역대 최대 규모(24조3000억원)의 그룹 투자계획에 대한 세부안도 다듬을 전망이다. 정 회장에는 지난해 추석 유럽 생산거점인 체코를 방문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한 바 있다. 그룹 관계자는 "올해는 난이도 높은 과제가 산적한 만큼 자택에서 밀도 높은 전략을 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회장은 올 초 신년회에서 '위기경영'을 선포하고 "앞으로 피해갈 수 없는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예측 불허의 국제 정세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급변 △무역 갈등 △전기차 캐즘 △신흥 경쟁사들의 도전 등을 거론하며 "잘 버티자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며 "위기의 배경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미래 기회의 창출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설 연휴 국내에 머물며 사업 현안을 점검하는 한편, 다음 달 최종현학술원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여는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 대한 준비에 돌입한다. TPD는 한·미·일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미국 재계 인사가 모여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최 회장은 매년 이 자리에서 글로벌 현안과 기업의 해법을 제안해온 만큼 올해에도 새로운 경영 비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자택에서 그룹 미래 전략인 AI와 바이오, 클린테크 등 'ABC' 분야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한다. 이밖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갑 HD현대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도 해외 일정 없이 자택에 머물며 경영 구상을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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