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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대정부 로비 지출을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의 로비 지출은 소폭 감소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이 반도체 현안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대미(對美) 로비액수를 기록으나,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AI스타트업의 로비 활동은 확인되지 않았다.
18일 미국 의회의 로비 정보 사이트 ‘클러크(CLERK)’에 따르면, 오픈AI·앤스로픽·허깅페이스 등 미국 AI 스타트업들이 지난해 대정부 로비에 총 224만 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전년 대비 211% 증가한 수치다.
오픈AI는 지난해 로비에 전년 대비 381% 증가한 125만 달러를 지출했다. 앤스로픽은 전년 대비 157% 증가한 72만 달러, 허깅페이스는 50% 증가한 27만 달러를 로비에 사용했다. 이들의 로비 목적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모든 법률 및 규제' 대응으로 백악관과 미국 상·하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지난해 대정부 로비 지출은 전년 대비 각각 2%,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총로비액은 1479만 달러로 전년 대비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빅테크 기업 중 AI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되는 메타(Meta)는 지난해 AI 관련 로비 지출을 대폭 늘렸다. 메타는 지난해 전년 대비 27% 증가한 2443만 달러를 로비에 사용하면서 생성형 AI 모델을 선보인 빅테크 기업 중에서는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빅테크 기업들과 AI 스타트업 간의 로비 지출 증가율 차이는 IT(정보통신) 시장에서의 입지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스타트업들은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 빅테크 기업들에 비해 미미하다. 이를 극복하고 정책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AI 스타트업들이 로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지난해 12월 진행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빅테크 기업들이 로비 활동을 다소 신중하게 조정한 반면, AI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정책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는 것이 로비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해는 트럼프 정권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AI 시장 점유율 경쟁이 시작되는 만큼, AI 스타트업들의 로비 액수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지난해 로비 지출을 줄였다.
알리바바는 252만 달러, 텐센트는 216만 달러를 로비에 사용하며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으며, 통신장비 등에서 미국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는 화웨이는 2023년 대미 로비로 146만 달러를 지출했으나, 지난해에는 정부 상대의 로비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이 반도체 수출 현안으로 인해 로비 액수가 역대 최대인 698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LG그룹은 2023년(52만5000달러)의 절반 수준인 24만 달러만 로비에 사용했다.
이 밖에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IT 및 AI 기업들의 대미 로비 활동은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한 로비스트는 “한국의 IT·AI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해 로비 활동을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트럼프 정부 이후 해외 플랫폼 규제 가능성을 우려하며 로비 문의를 하는 기업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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