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오사카 사카이(堺)시에 있는 샤프의 구형TV용 액정패널 공장 일부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약 1000억엔(약 9800억원)으로, 소프트뱅크와 '챗GPT 개발사' 미국 오픈AI가 이곳에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게 된다. 데이터센터는 올해 착공해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 컴퓨터 수만 대를 모아놓은 시설로 인터넷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의 핵심 인프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GPU(그래픽저장장치) 같은 AI 칩을 탑재해 AI 학습과 추론도 처리하고 있다. 새롭게 탄생할 사카이 AI 데이터센터는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최첨단 AI비서(에이전트)의 운용 거점이 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총 투자액은 GPU 10만장을 포함해 총 1조엔(약 9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카이 데이터센터를 풀가동하기 위해서는 GPU 10만장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GPU는 엔비디아 외에도 소프트뱅크그룹이 오픈AI, 오라클 등과 손잡고 미국에서 AI 인프라 정비를 위해 출범시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조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스타게이트와 소프트뱅크는 수요에 따라 단계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소프트뱅크는 샤프 공장 부지 면적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토지와 함께 기존에 있던 패널 공장, 전원 및 냉각 설비 등을 매입했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공급 상황을 확인한 결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전력 용량은 실제 가동 시 일본 최대 규모인 150메가와트(MW)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2028년까지 250MW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소프트뱅크는 또 사카이 데이터센터에서 자체 생성AI 기반 모델도 개발·운용하며, 일본 기업과 연구 기관 등에 대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 일본 전국 주요 도시에도 AI 데이터센터를 정비할 방침으로, 사카이, 도쿄, 홋카이도, 규슈 등 대형 거점 4곳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전자 왕국’으로 명성을 떨치던 일본은 1990년대 이후 TV와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공세와 세계 시장 구도 변화로 인해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더 이상 시대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강한 위기감을 갖고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AI 분야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특히 복잡한 고난도 업무에 대응하는 AI비서 개발을 위해서는 기업의 독자적인 데이터 학습이 중요하다. 여기에 최근엔 중요한 정보를 자국 안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데이터 주권’이 화두가 되면서 일본 역시 이를 운용할 거점 마련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한편 AI 기술 발전에 따라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오픈AI를 비롯해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 빅테크로서도 일본은 큰 내수 시장을 갖고 있는 데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 등에서 잠재력 높은 투자처다. 글로벌 통계 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4년 일본의 AI 내수 시장 규모는 81억2000만 달러(약 11조8100억원)로 중국 다음이며, 한국의 2.5배 수준이다. 2030년에는 365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 정부 또한 지난해 11월 AI와 반도체 산업에 2030년까지 최소 10조엔(약 97조87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새롭게 설립된 스타트업 전략 담당국에서는 외국인 대표의 일본 법인 설립 규제 완화 등 해외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오픈AI는 이번 사카이 데이터센터 착공으로 AI비서 기반 모델을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사업화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게 된다. 오픈AI는 지난해 4월 도쿄에 첫 아시아 사무소를 열고 일본어에 최적화한 ‘GPT-4’를 공개했다. 오픈AI가 특정 국가의 언어를 겨냥해 별도의 GPT 버전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밖에도 AWS는 지난해 일본 클라우드 설비 구축에 150억 달러(약 21조82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오라클도 클라우드 컴퓨팅 및 AI 인프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80억 달러(약 11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MS는 2년간 29억 달러(약 4조원)를 투자하고, AI와 로봇공학에 초점을 맞춘 연구소를 일본에 개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구글은 미국과 일본 간의 디지털 연결을 개선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해저 케이블 2개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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