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뛰어넘는 산 공부를 해가며 강인해졌다."

24년 전 3월 21일은 현대그룹 창업주이자 한국 경제사의 큰 별인 아산 정주영 회장이 별세한 날이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의 모태가 된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시작으로 자동차·철강·조선·건설 등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1세대 기업인이다.
배고픈 국가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에서 기업의 존재 목적을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고 칭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게 기업인이 할 수 있는 애국이라는 게 그의 평생 경영 철학이다. 이는 정 회장의 어록인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 되는 것이 곧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로 드러난다. 정 회장은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불굴의 기업가 정신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 세대에 위기를 극복할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평생을 노동자로 산 경영인...자동차, 건설, 조선업 선진국 대열에
정 회장은 일본의 쌀 배급제로 가게가 어렵게 되자 그 무렵 단골손님 권유로 자동차사업에 발을 딛게 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신인 '아도 서비스(ART SERVICE)'는 초창기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큰 화재로 위기를 겪었다. 공장과 수리를 하던 차량 모두 전소돼 빚더미에 올라앉은 순간에도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평소 신용을 쌓은 지인들에게 꾼 돈으로 맨 땅에서 다시 사업을 일궜고, 결국 1946년 해방후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간판을 달고 자동차 수리공장 부흥기를 이끌었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에 '현대토건사'를 세우고 1950년 둘을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6.25를 겪으며 미군 하청사업, 전후복구사업 등 건설업에 집중했고, 1960년대에는 해외건설 수주에 직접 뛰어드는 등 'K-건설'의 바닥을 다졌다. 1968년에는 사운을 건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국토 대동맥을 잇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K-조선'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조선업 진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올랐던 출장길에서 '500원 지폐'로 영국 선박계의 거물 '애플도어'의 찰스 롱보텀 회장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으로 "우리는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롱보텀 회장을 설득했다. 그의 보증을 받은 정 회장은 영국 은행에서 당시 4300만 달러 차관 도입을 받아냈고, 이 돈으로 울산 미포만 조선소를 건립해 지금의 HD현대를 탄생시켰다.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인류의 발전은 긍정적인 사람이 주도...정보, 노력, 용기 갖춰야"
정 회장은 평소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라고 말했다. 자동차 기술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산업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자동차 기술은 자동차 정비소로 첫 대형 사업을 시작한 정 회장의 꿈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미국 포드가 한국 시장을 진출하려한다는 소식을 접한 정 회장은 포드와 기술 제휴를 추진해 '코티나'를 만들었다.
1969년 현대차 공장 침수 사태로 포드와 결별한 정 회장은 현대차의 기술자립·독자생산에 매진했고, 6년만인 1975년 첫 독자 기술로 만든 후륜구동 세단 '포니'가 탄생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16번째로 자동차 독자 생산이 가능한 국가가 되는 순간이다. 이후 엔진과 변속기 등 자동차 전 부품을 현대차 독자 기술로 만든 '엑센트'가 출시됐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K-자동차' 전성시대가 열렸다. 기아 인수 후 현대차그룹은 정몽구-정의선 회장 체제를 거치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현대차는 포니 출시 50년만인 2025년 글로벌 완성차 톱 3위에 올라섰다.
정 회장의 경영 철학은 '신기업가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정 회장은 "인류의 모든 발전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주도 아래 이뤄졌고, 우리는 원대한 꿈과 긍정적인 청사진으로 미래를 내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을 향해서도 "국제 경쟁력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 대안을 어떤 국가, 어떤 기업이 더 빨리, 더 제대로 강구하는 가에서 판가름이 난다"면서 "기업인들도 성공하고자 한다면 모든 모험적인 정보, 모험적인 노력, 모험적인 용기 3가지를 갖춰라"라고 조언했다.
임직원들에게도 "나는 현대를 가장 큰 회사보다는 가장 깨끗한 회사로 만들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가진 회사로 만들자"며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 못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직장은 월급 때문에 다녀선 안된다. 자신의 발전 때문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사회 원로로서 국민들을 향한 일침도 거침없었다. 그는 "나를 세계적인 기업을 경영하는 한국인으로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다. 나는 그날 할 일에 대한 기대 때문에 마음이 설레서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또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작심만 하면 뛰어난 정신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라며 "세상을 밝게 보고, 사회에 보탬이 될 목적으로 살면 할 일은 태산처럼 쌓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존경과 찬사를 보낼 수 있는 나라만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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