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일용 기자 [사진=아주경제DB]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가 조 단위 유상증자 결정으로 시장에 파문을 일으켰지만 진행 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삼성SDI는 지난 8일 효력 발생으로 유증 발행이 확정됐으나 한화에어로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친 정정 요구를 받으며 진행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한화에어로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금감원은 지난 17일 한화에어로가 추진 중인 2조3000억원 규모 유증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을 요구했다. 지난 8일에 이어 두 번째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다. 금감원의 정정요구로 한화에어로의 유증 절차는 멈추게 됐다. 정정 요구를 받고 회사가 3개월 내로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유증 계획은 백지화된다.
한화에어로는 지난달 20일 이사회를 열어 1주당 0.1047주의 신주를 배정해 3조6000억원을 조달하는 유증 계획을 의결한 바 있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 유증 자금조달 계획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투자자의 반발이 심하자 한화에어로는 유증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줄이고 1조3000억원은 한화 계열사 3자 배정으로 조달하기로 하고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제출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또다시 한화에어로의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이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정정 이유로 △한화오션 지분매매 관련 내부 의사결정 과정 기재 미흡 △자금사용 계획 불분명 △제3자배정 유증 변경에 따른 영향 기재 필요 등을 꼽았다. 이번 유증이 한화그룹 승계와 관계가 있는지 소명하고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공개하라는 의도로 풀이된다.
두 번에 걸친 당국의 정정요구가 당혹스러운 가운데 한화그룹은 최대한 성실하게 시장과 소통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겠다는 입장이다. 한화에어로는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주주배정 유증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정정공시 요청에 앞으로 신속하고 성실하게 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춰 한화에어로는 18일 이사회를 열고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포르를 대상으로 한 1조3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증을 결의했다. 한화오션 지분매매로 한화에어로에서 빠져나간 자금을 원상복구한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증으로 확보한 자금을 포함해 약 11조원을 유럽 현지 생산거점 확보,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등 글로벌 방산 톱5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곳에 전액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한화그룹의 투자와 구체적인 자금 사용 계획 등에 힘입어 한화에어로의 주가는 지난 18일 주당 86만2000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증 발표에 따른 충격은 진즉에 떨쳐내고 주주가치 제고를 실현한 것이다.
방산 업계에선 한화에어로의 계획이 지난해 두산그룹 사례처럼 금감원의 반대로 3~4개월 이상 소요되며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투자 및 연구개발용 자금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육해공 패키지 전략으로 글로벌 방산 사업 수주를 늘리며 매출·영업이익을 확대하려는 한화에어로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증은 기업들의 합법적인 자금조달 방법 중 하나다. 유증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화에어로가 록히드마틴, 보잉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이때 발목을 잡는 것이야말로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정부 당국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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