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기고]이준석만 왜 멸사봉공(滅私奉公)해야 하나?

  • 황정일 전 서울시 소통특보

 
황정일 전 서울시 민생특보
황정일 전 서울시 민생특보

이준석과 김진의 엊그제 대담(對談)은 꽤 흥미로웠다. 이준석은 개혁신당의 대통령 후보다. 지지율이 꾸준히 5~9%를 오가고 있어 이번 대선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국민의힘 전(前) 대표이기도 하다. 김진은 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염원하는 대표적인 보수 논객이다.
빨려 들어간 지점은 후보 단일화를 공방하던 부분이었다.
김진의 공세가 먼저였다. 이준석은 이재명 좌파(?) 집권을 막고 보수 정당이 집권하는 데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과거 당했던 개인적 일이나 사사로운 사건으로 인한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대통령 선거라는 큰 판에 어울리는 공적 마인드를 가져라. 보수 정당에서 혜택을 받고 커 온 만큼 보수 가치를 지키는 데 멸사봉공(滅私奉公)해라.
 
이준석의 대응은 이랬다. 과거 국민의힘으로부터 받은 온갖 모욕에도 불구하고 멸사봉공의 자세로 대통령 윤석열을 만들었다. 그 뒤로 국힘은 왕따와 멍석말이로 날 쫓아냈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와 국힘과는 괴리감이 있다. 신용거래가 안 되는 집단이다. 형수 쌍욕을 했던 사람과 계엄을 했던 사람 중에 누가 더 대의에 부합하지 않는지 요샌 판단이 안 선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의 대담에 불이 났다. 김진의 주장에서 이재명 집권을 막고자 하는 보수 논객의 진정성이 왕 느껴졌다. 보수의 입장에서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절절하게 만져졌다. 동시에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인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나쁘게 얘기한 거다. 좋게 얘기하면 공동체 중심의 향기다.
 
나를 포함한 소위 ‘틀딱 보수’들의 몸에 배어 있는 인식이다. 길을 가다 애국가가 울리면 발길을 멈추고 경례를 때려야 했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대개는 그렇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 인식 체계에는 긍정과 부정의 효과가 둘 다 있다.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이 빛나는 긍정적 효과다. 국가의 안보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군경 공무원,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가정을 포기하고 야근을 밥 먹 듯하던 산업 역군 등등 모두가 미담의 재료로 충분했다. 그들에게 국가나 회사가 충분한 보상을 해줬는 지에 대한 논의는 별개다.
 
너도 그래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집단 가치를 강요할 때 부정의 역효과는 발현(發顯)된다. ‘나 때는 이랬는데’ 하는 ‘꼰대 정신’이 밑장에 깔린 게 은연중에 드러난다. 군경 공무원이, 산업 역군이, 젊은 시절 보여준 ‘희생’을 국가나 사회가 충분히 보상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젊은 세대의 ‘워라벨’을 욕하는 ‘노땅’은 어쩌면 자신이 희생한 지난 세월이 야속하고 약 올라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오해도 든다.
 
이준석은 85년생, 김진은 59년생이다. 26년의 나이 차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더하여 반쯤 더 변할 수 있는 세월이다. 인식의 격차는 어마무시할 거다. 삶의 방식도, 판단의 기준도 그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거다. 그 깊이와 너비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어른 세대는 그 차이에 짜증을 낸다. 버릇이 없다 싸가지가 적다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다. 나이나 직책으로 그 차이를 누르고 메꾸려 한다. 그래선 안 될 일이다. 김진의 사고방식으로 이준석의 행위를 재단(裁斷)하고 강요하는 일은 몹쓸 짓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대(世代) 간 갈등의 주범이다. 김진의 우선순위가 이준석의 그것과 같다는,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사회자가 불타는 대담을 잠시 식히려고 이준석에게 묻는다. 어떤 지점을 얘기해야 단일화를 할 수 있는가? 그걸 내가 여기서 얘기하면 너무 싼티 나는 거 아니냐. 싸가지 없다는 이준석인데 염치는 있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김진은 이준석에게 멸사봉공을 주장하기 전에 국민의힘 지도부에 먼저 요구해야 했다. 강하게 주장해야 했다.
반대 진영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대선후보를 이준석에게 양보해라. 빚 진 거 이자 쳐서 갚는 거다. 어렵다면 국민의힘 대표 자리를 이준석에게 돌려줘라. 빌린 돈 그나마 원금을 갚는 거다. 이준석의 의무를 이야기하기 전에 어떤 제안이 그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수 있는지를 고려했어야 했다. 칼자루는 그가 쥐었는데. 소통의 순서가 이래야 하지 않을까.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보수 논객으로서 좌파 집권을 막는 게 진심이 아니고 그저 광을 팔기 위한 쇼가 아니라면….
이준석을 향한 김진의 공격은 가정법에 크게 의지했다. 그의 기대였기도 했을 거다. 한동훈이 괄목할 만한 지지율로, 격차로 김문수를 제치고 치고 나오면.
 
한동훈이 아니고 김문수가 국힘의 대선후보가 됐다. 이준석과 한동훈은 싱크로(synchro)율 90% 이상이라는 김진의 주장은 김이 샜다. 이준석과의 단일 후보 논쟁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셈이 됐다. 
요즘은 허무한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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