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희대의 괴짜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없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가 괴짜라고 불리는 이유는 취임 100일 동안 내놓은 대통령 명령(executive order:61개), 대통령 지시(presidential memoranda:16개), 그리고 대통령 선언(presidential proclamation:31개)이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더 많아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경제정책들이 하나같이 기존의 확립된 이론이나 상식을 뒤집거나 거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관세정책은 세 방면 전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불공정거래에 대한 무역법(The Trade Act 1974) 301조 관세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에 대한 관세는 거의 전부가 301조 관세였다. 두 번째는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발동하는 무역확장법(The Trade Expansion ACt 1962) 232조 관세다. 트럼프 1기 때 국가안보를 빌미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5% 관세를 물린 것이 현대판 232조 관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32조 관세 25%는 트럼프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적용되고 있으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는 트럼프 1기 때 적용하려고 하다가 미루었고 2기에 들어와서 25%가 부과되었다. 앞으로 의약품, 희토류, 에너지 혹은 오락물까지도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1기 때와 달리 트럼프 2기에 들어서 처음 부과된 새로운 관세는 상호관세다. 1934년 상호관세법과 1976년 국가비상조치법에 근거하여 미국에 대해 과도한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국가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것이 상호관세다.

주요국에 대한 미국의 상호관세율[사진=저자 제공]
알려진 바에 의하면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은 대미국 흑자를 대미국 수입으로 나눈 값에 조정계수를 곱하여 정했다. 예컨대 2024년 한국의 경우 대미국 흑자는 658억 달러이고 대미국 수입은 657억 달러이므로 그 비율은 100%인데 여기에다가 조정계수(1/4)를 곱하면 25%가 나온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미국 흑자가 683억 달러이고 대미국 수입은 799억 달러이므로 비율은 약 85%인데 조정계수(1/3.54)를 곱하면 상호관세율 24%가 나온다.
트럼프 관세정책의 첫째 문제점은 이론적인 근거가 없고, 실증적 효과가 입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공정 거래에 대한 301조 관세나 국가안보에 근거한 232조 관세도 무엇이 불공정거래인지, 무엇이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어서 미국 의회나 학계에서 오랜 논란의 중심에 있어 왔지만 상호관세 역시 그것이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근거가 없이 시행이 되고 있다. 예컨대 어느 나라의 미국에 대한 수출이 미국에는 구할 수 없으면서 미국에 매우 필수적인 그 나라 특산물인 경우 관세를 아무리 높이 매긴다고 하더라도 수출이 줄어들 수 없는 경우라면 상호관세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문제점은 상호관세율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한 25%도 너무 높지만 중국에 대한 125%는 물론 베트남이나 마다가스카르 등에 대한 46%의 관세조차 거의 이성을 잃은 광적인 폭탄세율이다. 셋째 문제점은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상호관세 발효 당일 전격적으로 90일 유예 조치를 내린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예일이 끝나는 7월 초에 어떤 깜짝 조치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또 다른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낳게 하는 것이다. 이론적 근거도 취약하고 과도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오락가락 상호관세는 교역상대국과의 협상용이었다는 그 본래 목적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나 그의 각료들도 쌍무적 협상의 내용에 따라 상호관세율을 낮출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음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당초에 어떤 경우라도 지키겠다고 하던 기본관세율 10%도 경우에 따라서는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상호관세는 차별적 관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국가별로 차별적 관세를 미국이 부과한다는 것은 지난 수세기 국제무역 질서의 근본원칙, 즉 무차별대우의 원칙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폭거다.
트럼프 관세정책의 결정적인 흠결은 인플레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인플레가 2.5% 아래로 떨어지지도 않고 지속되는 분위기에서 터진 관세폭탄으로 연준은 도저히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국민들은 무섭게 오른 생활필수품 가격으로 절망적으로 분노하는 분위기다. 금융시장에서는 폭격적인 상호관세율 때문에 주가와 국채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상호관세 적용을 전격적으로 유예했지만 이는 상호관세가 잘못된 정책이라는 사실을 시장이 명백하게 입증한 것이다. 7월 초가 되면 상호관세는 영구적으로 유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본관세 10%도 없던 일이 되거나 5% 혹은 2%와 같은 상징적인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형편을 잘 아는 교역상대국들도 미국에 대한 협상 조건에서 순순히 적극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벌기 지연작전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트럼프 2기의 상호관세 정책은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트럼프의 아시아권 환율 압박정책
무역적자도 줄이면서 미국의 성장동력을 높이려던 관세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트럼프 정부는 환율정책에 손을 댈 것이다. 이미 트럼프의 책사 중 한 사람인 스티븐 미런이 밝힌 대로 인위적인 압박을 통해 달러가치의 하락을 유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런의 구상대로 100년채를 발동하여 1985년의 플라자 합의처럼 유럽이나 일본이 달러약세, 즉 자국통화 강세에 동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유럽이나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권 국가의 환율을 강세로 전환시키도록 압력을 넣는 방법이다. 미국의 물가를 자극하는 높은 관세 부과 대신 아시아 국가 통화의 달러에 대한 고평가를 압박하여 인플레 위험 없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매력있는 정책이다. 대만 달러나 태국 바트화나 말레이시아 링기트화나 한국의 원화가 달러에 대해 고평가되면 이들 국가에 대한 관세 인상이 없더라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크게 축소될 수 있다. 이들 아시아국가 수출업체들은 거의 100% 수출가격을 달러로 표시하고 있으므로 환율 변화가 직접적으로 달러표시 수출가격의 인상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통화가치가 절상되더라도 미국의 물가상승 및 인플레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나 유럽은 다르다. 이들 국가의 수출은 상당부분 자국통화로 표시되므로 환율 변화로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달러표시 수출가격의 변화가 일어나서 미국의 인플레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지난 어린이날과 석탄일 연휴를 보내는 동안 아시아권 통화들이 달러에 대해 큰 폭의 강세를 보인 현상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1440원을 넘보던 원화환율이 1370원대로 하락하면서 주말 동안에만 원화가치가 4.25%나 상승했고 대만달러는 같은 기간 6.7%나 강세가 되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2% 남짓 통화가치가 올랐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원화환율의 방향은 대체로 강세로 정해졌다. 관세문제가 가라앉으면 본격적인 원화강세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미국이 곧 금리를 내릴 것이므로 금리차 문제는 지금과 거의 달라질 게 없다. 원화가 약세가 되는 것을 미국이 눈감아 줄 리가 없다. 엔화도 마찬가지로 대미 강세로 갈 것이다. 관세 충격의 여운과 원화강세에 따른 수출부진은 저성장을 장기적으로 고착시킬 것인데 이를 푸는 해법을 찾는 것이 숙제다.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