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중재 공간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솔솔 나오는 등 양 국가의 전쟁 종식 가능성에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 재진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전쟁 이전과 이후 시장 구조의 재편에 따라 전략 재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러시아 재진출을 타진할 수 있는 시기가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기업들이 현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종전이 확정된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게 되고 기업들도 현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수 있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철수했던 우리 기업들 역시 속속 재진입 채비를 갖추는 태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수출이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출처 다변화를 위해 러시아 문을 두드리는 게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러시아 가전 시장에 진출했던 기업들의 동향에 관심이 집중된다. 러시아 가전 시장은 도시화, 기술 혁신, 정부 정책, 소비자 트렌드 등의 요인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스마트 가전 및 에너지 효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러시아 가전 시장은 2023년 111억2000만달러(약 16조원)에서 2029년 131억8000만달러(약 19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주 루자에 위치한 가전 공장의 생산을 부분적으로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8월 러·우 전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 LG전자는 생산설비 노후화 방지 차원에서 시험 가동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여전히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러시아 생산은 지금 아직 전쟁이 종료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보고 있는 상태"라면서도 "규제라든지 이런 부분이 해제가 되면 시작을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고, 지금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도 TV·냉장고·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칼루가 공장 재가동 등을 검토 중이나 현재로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러시아에서 마케팅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다만 러시아 시장 재진출에 대한 리스크도 우려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시장이 중국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국 업체 등이 과거의 높은 점유율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이미 가전업계는 화웨이, 샤오미, 레노버 등 중국 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내줬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LG의 러시아 TV 시장 점유율은 62%에서 20%로 쪼그라들었으나,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12%에서 36%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2023년 샤오미가 33%의 점유율로 선두주자 자리를 꿰찼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변화가 크다. 전쟁 전인 2021년 러시아 신차 판매 점유율 1위는 현대차그룹(24.4%)이었으나 지난해 1위 라다(27.8%)에 이어 체리(20.4%), GWM(14.2%), 지리(12.3%), 창안(7.0%) 등 중국 업체가 2∼5위 자리를 꿰찼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는 전쟁 향방, 정책 변화 등 외부 요인에 따라 구조가 급변할 수 있는 고위험 시장"이라면서 "재진출 시점·방식 등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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