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으로 진통을 겪었던 미국 경제가 이번엔 감세안이라는 또 다른 악재에 직면하고 있다. 대규모 감세 추진이 재정 건전성 훼손과 국가 부채 급증 우려를 키우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가 160억 달러(22조448억원) 규모로 진행한 미국 국채 20년물 입찰에서 발행금리는 5.047%로 결정됐다.
이는 지난달 입찰 때 발행금리인 4.810%와 비교해 23.7bp(1bp=0.01%포인트) 오른 수치로, 발행 전 거래금리보다도 1.2bp 높았다. 20년 국채 수익률은 경매 후 5.127%까지 상승하면서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같은 날 30년물 국채 금리도 뉴욕증시 마감 무렵 5.09%까지 올라 전장보다 12bp 상승했다. 10년물 금리 역시 11.2bp 오른 4.599%를 기록했다.
국채 입찰 수요도 부진했다. 이날 응찰률은 2.46배로 집계돼, 직전 6회 평균치(2.57배)를 밑돌았다.
이번 입찰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로 한 단계 낮춘 뒤 처음 진행된 쿠폰 국채(이표채) 발행으로, 감세와 부채를 둘러싼 시장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무디스는 지난 16일 연방정부의 급격한 부채 증가와 감세 정책에 따른 재정 수입 감소를 근거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인 Aaa에서 Aa1로 1단계 강등한 바 있다.
액션이코노믹스의 킴 루퍼트 글로벌 채권 분석 총괄 전무는 "실망스러운 경매 결과는 미국 자산에 대한 수요 약화와 재정적 우려 속에 벌어지고 있는 '셀 아메리카' 움직임과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시장 불안은 하원을 통과 중인 감세안이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은 "주식과 달러가 폭락한 반면 미국 국채 수익률은 상승한 이번 경매는 투자자들이 급증하는 국가 부채를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이 국채시장에 대한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하원 공화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감세 법안 처리를 압박하고 나섰다. 해당 법안에는 2017년 감세법의 핵심 조항 연장과 함께 새로운 감세 조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영리 싱크탱크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이번 감세안이 2034년까지 미국의 국가 부채를 최대 5조2000억달러까지 늘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미 의회예산처(CBO) 역시 향후 10년간 미국의 재정적자가 GDP의 6.8%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외환 분석가는 "미국은 현재 의회에 계류 중인 조정 법안을 대폭 수정해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의 재정 긴축 정책을 구현하든지, 아니면 미국 부채의 비달러 기준 가치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매수할 만큼 충분히 싸질 때까지 실질적으로 하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슐러파이낸셜그룹의 톰 디 갈로마 매니징 디렉터도 "우리는 이미 적자가 누적된 상태인데, 이 문제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며 "지금 시장은 정부와 싸우고 있는 중이며, 이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을지 가늠하려 하고 있다. 부채가 너무 많다"고 진단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일본과 유럽 등의 장기물 국채 금리도 잇따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일본의 30년물는 장중 3.185%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40년물 국채 금리도 3.635%까지 올랐다.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전장 대비 6.1bp 오른 5.516%를 기록했고,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도 전장 대비 4.7bp 오른 3.133%를 기록했다.
프리야 미스라JP모건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와 관련해 "채권시장이 정책결정자들에게 재정 건전성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무시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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