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0일 서울 여의도 FKI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통상·경제안보 정책 과제와 전망' 세미나에서 "수출 집중화 경향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됐지만 최근 들어 오히려 통상 집중의 경향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상당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 연구위원은 "한국은 특정 지역·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며 "수출 다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출 집중도는 더 강화되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한국의 1·2위 수출국은 각각 중국과 미국이었는데, 두 국가의 수출 비중을 합치면 43.4%(홍콩 포함)에 달한다. 특히 수출 품목 중 약 2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반도체 수출 중 중국의 비중이 51.7%에 달한다.
특정 지역·품목에 대한 수출 집중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국의 지리적 수출 집중도지수(HHI)는 2020년 0.28이었는데, 이는 2015년 이후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HHI가 높을수록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편중이 높다는 의미다. 품목군 HHI 역시 최근 3년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0.187에 이르렀다. 반도체·자동차 수출 의존도가 특히 높은 상황인데, 이러한 흐름은 일본·독일·영국 등 다른 수출 경쟁국들과 비교해도 더욱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기본 전략 속 앞으로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산업적 협력 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미국에 대한 협력의 의지, 한미동맹에 대한 기여 의지에 대한 신호를 명확히 보내는 것이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며 "한두 개의 핵심 이슈에 집중해 그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품목별로 미국과 잘 협상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무역 불균형이 해소돼야 하는데,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이태규 연구위원은 "관세·비관세 조치 분야에서 우리가 미국 정부의 양보를 얻는 것이 핵심 목표이므로 다른 분야에서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경제안보, 투자협력 분야에서 미국과 어떤 논의를 하느냐가 전체 협상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즉 조선 등 미국이 적극적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분야에서 최대한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경제안보 관련성과 미국의 산업 경쟁력에 따라 협력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조선·반도체·바이오·배터리 등에서 다방면의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한국이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통상 전략의 물꼬를 틀자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다양한 분야의 산업 협력을 미국에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하고, 동시에 한국도 시너지 효과를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관세·비관세 분야에서 최대한 면제 조치를 얻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통합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최석영 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법무법인 광장 고문)는 "현재 각 부처의 경제안보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조율하고 부처 간 협업을 촉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 전 대사는 "현재 정부가 대응하는 경제안보 조치는 굉장히 파편화돼 있다"며 "경제안보의 컨트롤타워가 중요하다는 것이며, 통상 기능을 어느 부처에서 하든 그 부처가 어떤 전문적인 포괄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경제인협회와 선진통상포럼이 공동 개최한 첫 세미나다. 허윤 서강대 교수(선진통상포럼 회장)는 개회사에서 "주요국의 경제안보 정책 강화 속에서 미국과의 통상 협상 타결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극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앞으로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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