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으로부터 방위비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가 있기 전부터 자체적인 안보 전략에 따라 방위예산을 꾸준히 확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방위비 인상 계획이 재정 부담 및 엔저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는 일본과의 동맹 관계까지 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방위비 예산은 전년 대비 9.4% 늘어난 약 8조7000억엔(약 820조원) 가량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외에 방위 관련 공공사업비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약 10조엔으로, 일본이 올해 방위비 목표로 제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1.8%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에 일본은 방위비는 2023년에 처음으로 6조엔을 넘어선 데 이어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앞서 일본은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재임 중 ‘2027년까지 방위비를 GDP의 2% 수준인 약 11조엔으로 확대하고, 2023~2027년까지 5년간 방위비를 총 43조엔으로 늘린다’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23년 회계연도에는 방위비를 GDP의 1.4%, 2024 회계연도에는 1.6%까지 올리면서 단계적으로 방위비를 높여 가고 있다.
이 계획은 오랜 기간 미국에 방위를 크게 의존해 왔던 것을 벗어나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 주변 안보 환경 변화에 독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일본은 2024년 연간 방위백서에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 F-35 전투기 등 최신 무기 도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높은 부채 및 엔저 등이 일본의 방위 계획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236.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방위비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담뱃세·법인세·소득세 인상 등 세수 확대 계획을 세운 상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26년부터 법인세에 방위세 4%를 추가하고 2027년부터는 소득세에 방위세 1%를 부과할 방침이다.
또한 작년에는 엔저로 인해 실제적인 일본 방위 예산은 30%나 줄어든 것과 같다는 닛케이 보도도 있었다. 기시다 전 총리가 2027년까지의 5년간 방위비 계획을 수립할 당시 감안한 엔 환율은 달러 당 108엔이었는데, 현재는 달러 당 147엔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작년에 160엔을 넘었던 것에 비하면 완화된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무기를 도입할 경우, 엔저는 구매력에 상당한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도통신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 사항(GDP 대비 3.5%)은 재원 확보 측면에서 전망이 서지 않는다며 “요구받는다면 새로운 마찰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따라서 미국의 과도한 방위비 압박이 오히려 미일 동맹 관계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아시아 안보 전문가 잭 쿠퍼는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수준과 관련해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에 보내고 있는 비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메시지는 역효과를 낳는다”며 “미국을 가장 강하게 지지하는 외국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해당 국가 내)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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