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의 뚝심이 통했다. 지난해 5월 반도체 수장으로 올라선 뒤 1년 넘게 공들인 10나노급 6세대(1c)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다. SK하이닉스와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할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개발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까지 HBM4 개발을 완료하고 하반기 중 엔비디아 퀄테스트(품질 검증) 통과에 도전한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에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해 낼지 주목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10나노급 1c D램 공정에 대한 내부 승인 절차인 PRA(Production Readiness Approval)를 마쳤다. 차세대 D램 공정 개발을 위해 회사가 정한 신뢰성 테스트 통과율, 수율(합격품 비율) 등 핵심성과지표(KPI)를 충족하고 조만간 양산에 돌입할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1c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업계에서는 HBM 시장 경쟁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HBM은 D램 칩을 여러 개 수직으로 쌓아서 만드는데 삼성전자는 HBM4 제조에 1c D램을 업계 최초로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주요 고객사에 HBM4 샘플을 공급한 상태다. 다만 이들 제품에는 기존 1b 공정 기반의 D램 칩이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1c D램 공정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면 기술력과 생산효율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은 엔비디아에 대한 HBM 납품이 1년 넘게 지연되면서 세계 D램 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에도 쫓기는 신세다.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이 본 궤도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최근 AMD에 공급을 시작한 HBM3E 12단 제품 양산 속도를 높이는 한편 6세대 HBM4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특히 개화기를 앞둔 HBM4 시장에선 시장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삼성 반도체 사업의 재도약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에 대한 신뢰 역시 더욱 굳건해질 전망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메모리 개발실 출신으로 내부 약점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DS부문장을 맡은 뒤 조직의 '새판'을 짜는 데 집중해 왔다. 시장에서는 전 회장의 과감한 재설계 결정과 공정 최적화 작업이 수율 개선을 이끌었다고 본다. 최근 전 부회장은 엔비디아 본사를 찾아 HBM3E 12단 공급을 타진하는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HBM4, 커스텀(맞춤형) HBM 등 신시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질 없이 계획대로 개발하고 양산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HBM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엔비디아 납품 성사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반도체 위기를 타개할 삼성의 개발 성과 소식이 이어지면서 빅테크와 협력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