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최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진행한 AJ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동 사태는 단지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핵 문제를 안고 있는 여러 국가와 지역, 특히 한반도 정세에도 중대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사적 억지력과 방어 능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6월 13일 이스라엘이 ‘라이징 라이언 작전(Operation Rising Lion)’을 통해 이란 핵 및 군사시설을 선제 타격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21일에는 미국이 GBU-57 벙커버스터를 장착한 B-2 폭격기를 동원해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Operation Midnight Hammer)’을 감행, 포르도 지하 농축시설을 겨냥했다. 이에 대응해 이란은 카타르 주둔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고, 23일 미국의 중재로 양측 간 휴전이 이뤄졌다.
쿠제치 대사는 “이번 공격은 미국의 사전 인지와 묵인, 일부 유럽 국가의 지지 아래 이뤄진 것으로 명백한 국제 규범 위반”이라며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개발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향후 이란에 대한 추가 공격 가능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자, 그는 “이란은 자국의 주권을 수호하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란 핵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분석해온 전문가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그 지지자들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핵합의(JCPOA)를 존중했더라면, 중동의 안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사이드 쿠제치(Saeed Koozechi) 주한 이란 대사 [사진=AJP 한준구 기자]](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7/04/20250704100010288273.jpg)
이번 사태는 북한 문제와도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고 쿠제치 대사는 설명했다. “미국이 이번 중동 사태에서 보인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란과 북한은 모두 ‘비핵화 대 제재 완화’라는 협상 구도를 공유하며 오랜 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북한은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핵시설 폐기와 관련하여 미국과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된 바 있다.
한편 이란은 1973년 북한과 수교한 이래 반미 노선을 공유하며 제재를 동시에 받아온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현재도 평양에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북한과 유사한 입장을 취해왔다. 2006년 서방 주도의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북한은 이란 핵시설을 겨냥한 무력 공격에 대해 6월 19일과 2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동안 이란 관련 입장을 좀처럼 밝히지 않았고, 중동 문제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공식 논평을 자제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를 계기로 북-이란 간 안보 협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쿠제치 대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단호히 부인했다. 그는 “양국 간 협력은 경제와 문화 교류에 국한돼 있으며, 이란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북한과 군사 협력을 맺은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이란 핵 프로그램은 에너지 생산과 의료 목적에 한정된 평화적 성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주평양 이란대사관과의 직접적인 소통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로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없지만, 북한 당국도 관련 사안을 주의 깊게 분석하며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정치 상황, 고위 관계자들의 인터뷰 내용 등은 각국 주재 대사관 간에 공유되며, 평양 주재 대사관도 예외는 아니다”고 덧붙였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쿠제치 대사는 “이재명 정부는 이번 중동 사태가 자국의 안보는 물론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될 지역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북한과의 긴장 완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상당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리한 외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끝으로 쿠제치 대사는 “이란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히며, “한국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중동의 긴장 완화에 있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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