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며 글로벌 배터리 업계 전반에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적체)' 현상이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가 이에 정면 돌파에 나서고 있다. 캐즘은 초기 수요층에서 대중 시장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수요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북미·유럽·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각기 다른 글로벌 핵심 시장을 겨냥해 특화 전략을 구사하며 산업 전환기에 대응하고 있다.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현지화 생산, 기술 고도화 등을 동시에 추진해 단기 수익성과 장기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를 중심으로 북미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며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미시간 랜싱 공장 지분을 100% 확보해 현지 독자 생산 체제를 완성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최적화된 공급망을 갖췄다. 이에 따라 미국 보조금을 제외한 2분기 실적에서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중국 체리자동차와 약 8GWh 규모의 삼원계 원통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차세대 4680 원통형 배터리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유럽 프리미엄 완성차 시장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약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헝가리 공장 증설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며, BMW·아우디 등 유럽 고객사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시장 입지를 넓히고 있다. 아울러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며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이 뛰어나 상용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SK온은 북미 ESS 시장을 신성장 축으로 낙점하고 본격적인 공략에 나섰다. 지난 10일 양극재 전문기업 엘앤에프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용 양극재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LFP 전용 생산라인 전환을 추진 중이다. ESS는 가격과 안정성이 관건인 시장으로, SK온은 해당 전략을 통해 미국 AMPC(첨단 제조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북미 현지 공급망을 강화할 계획이다.
3사의 공통된 대응 전략은 시장 다변화와 기술 혁신을 통한 체질 개선이다. 고금리, 보조금 축소, 공급망 리스크 등 복합적인 변수에도 불구하고 특정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생산 거점을 분산시킴으로써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K-배터리 3사가 각기 다른 강점과 전략으로 캐즘 국면을 돌파하고 있다"며 "이번 시기는 단기 대응을 넘어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