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가능하다는 희망은 또다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거대한 바위를 어깨에 지고 산을 오르지만 늘 정상 직전에서 바위는 굴러떨어진다. 바위를 밀던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고 묵묵히 또 밀어 올린다. 이 과정은 무한정 반복된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의 형벌'로 알려진 이야기다. 문제는 이 비극적인 반복이 신화 속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금리 대출을 향한 희망을 품고 제도권 금융의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중저신용자 역시 오늘날의 시시포스와 다름없다.
중금리 대출은 정부와 제도권 금융이 내세운 '포용 금융'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 공급은 대환이나 정책금융에 머물렀고, 중금리 신용대출이 민간에서 자리 잡기는 어려웠다. 은행은 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참여를 꺼렸고, 상호 금융기관은 담보 중심의 영업 전략을 고수하며 무담보 신용대출에 소극적이었다. 저축은행조차 높은 연체율과 모집인 비용 같은 고정 원가 부담, 정교한 리스크 관리 역량의 한계로 인해 적극적인 공급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신용점수 600점대인 차주, 자영업자, 신파일러(금융이력 부족자) 등은 매번 희망을 품고 금융기관의 문을 두드렸지만 높은 대출 문턱 앞에서 번번이 돌아서야 했다. 시시포스가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마다 바위와 함께 굴러떨어졌던 반복의 비극과 똑 닮았다.
이 좌절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신용을 단 하나의 점수로 환원해 버리는 리스크 평가 구조에 있다. 신용점수는 대부분 과거 이력에 기반해 산출되며 현재 상황이나 미래의 상환 가능성을 정밀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 결과 상환 능력과 의지를 갖춘 수많은 개인이 '리스크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기회를 잃는다.
예컨대 긱워커는 금융 거래 이력이 없어 전통 금융권에서는 일률적으로 고위험군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과거 필자가 속한 회사가 이들에게 대출을 실행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성실히 상환을 마쳤다. 더 주목할 점은 같은 '긱워커' 집단으로 분류되더라도 직군별로 상환 의지와 패턴에 뚜렷한 차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정교한 리스크 관리는 이러한 맥락을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정밀하게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온투금융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중저신용자를 기술 기반의 평가 체계와 다양한 대체 데이터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며 기술을 고도화해 왔다. 나아가 최근에는 오랜 염원이던 저축은행 자금 연계를 통한 중금리 대출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며 그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공급한 연계 대출의 금리는 최저 9.3%, 최고 16% 수준이며, 가중평균금리는 11.52%로 나타났다. 이는 '정교한 리스크 평가 기술'이 있다면 중저신용자를 고금리에 내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말하자면 현대판 시시포스가 밀어야 했던 바위의 무게를 기술과 업권 간 결합을 통해 실질적으로 덜어준 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렵사리 열린 저축은행과 온투업 간 연계 투자가 자칫 복잡한 규제 해석이나 업권 간 이해관계 속에 묻히지 않고 시장 중심의 지속 가능한 체계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구조가 특정 업권에 국한되지 않고 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사 등 보다 다양한 금융기관으로 열려 진정한 '포용 금융' 생태계로 확장되길 바란다.
시시포스의 바위를 함께 드는 금융. 앞으로 온투업이 저축은행을 넘어 다양한 업권 간 혁신적 결합을 이뤄내고 그것이 금융 포용의 방향으로 확장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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