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외부에 걸린 OPEC 로고가 보이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9월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54만7000배럴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2024년 1월부터 유지해 온 자발적 감산 정책을 사실상 종료한 것이다.
미국이 인도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압박 수위를 높이는 조치로 풀이된다. 여기에 원유 증산으로 인한 유가 안정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관세 정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OPEC+는 이날 화상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8개 참여국이 9월부터 산유량을 하루 54만7000배럴 늘릴 것”이라며 “건강한 경제 상황과 낮은 재고 수준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증산에 참여하는 산유국은 그간 자발적 감산을 시행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자흐스탄, 알제리, 오만 등이다.
OPEC+는 “추가적인 자발적 감산 조정에 대한 단계적 해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중단되거나 철회될 수 있다”며 시장 상황의 정기 검토를 위해 매달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전했다. 차기 회의는 오는 9월 7일 열릴 예정이다.
2024년 1월 사우디 등 주요 8개 산유국은 당시 전기차 확산과 중국 수요 부진 우려 등을 이유로 산유량을 자발적으로 하루 평균 220만 배럴씩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세계 수요의 약 2.4%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러다 OPEC+는 지난 4월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증산 압박에 단계적으로 감산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8개국은 4월 하루 13만8000배럴을 시작으로, 5~7월에는 매월 41만1000배럴, 이번 8월에는 54만8000배럴의 증산을 결정했다.
이번 증산 조치는 미국이 인도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인도가)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 에너지의 최대 구매국이 되고 있다”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도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하게 밝혔듯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휴전 압박을 무시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제재를 예고했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교역국에도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미 뉴스위크는 OPEC+의 원유 증산 논의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압박 조치의 일환”이라고 짚었다.
“인도, 트럼프 압박에도 러시아산 원유 구매 계속”
우크라이나전 발발 후 인도는 러시아 원유 구매를 대폭 늘렸다. 현재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러시아 원유 수입국으로, 인도는 하루 200만 배럴이 넘는 양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는 인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3분의 1을 넘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강행할 태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인도 고위 당국자 2명을 인용해 인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러시아 원유를 계속 구매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OPEC+의 원유 증산 결정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높은 인플레이션 속 미국 내 물가 인하 등 주요 과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울러 미국은 여전히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이 다른 공급처로 전환하도록 설득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들이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OPEC+가 원유 증산에 합의하면서 이런 우려는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뉴스위크는 평가했다.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면 원유와 휘발유 가격은 하락할 수 있다.
다만 국제 원유 시장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오는 8일까지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추가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못박았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경고에 ‘핵 위협’으로 맞섰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핵 잠수함 2대 배치’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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