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도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 민사소송 시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의 증거를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디스커버리)' 마련에 고삐를 당겼지만 준비 단계에만 머물고 있다.
6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실시한 '2024년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연간 기술침해 건수는 약 299건으로 추정된다. 피해 기업당 평균 손실액은 약 18억2000만원이다.
기술침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벤처기업협회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488개 벤처기업 중 268곳(54.9%)은 특허침해소송 시 증거 부족을 경험했다. 현행 특허법에서는 침해자의 제조 시설에서 증거 조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응답 기업 중 15.2%(74개사)는 실제 특허침해소송을 경험했는데 이들은 '증거수집 곤란'(73.0%)을 애로 사항 1순위로 꼽았다. '소송기간 장기화(60.8%)', '소송비용 과다(59.5%)'가 그 다음이었다.
손해배상이 인정된다 해도 배상액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중기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평균 청구 금액은 약 8억원인 반면 법원에서의 인용액은 1억5000만원 수준으로 한참 뒤떨어진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기술탈취 입증뿐 아니라 소송에 대한 비용 부담과 재판 스트레스로 인해 소송을 걸고 싶어도 포기하는 사장님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술침해 내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수준 높은 전문지식이 요구되다 보니 재판과정이 오래 걸리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납품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쉽사리 대기업에 대한 기술침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수년 전 한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침해를 당했던 중소기업 대표 A씨는 "해당 기업에 내용증명을 보내려 했지만 앞으로 투자 받기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 대부분이 만류했다"고 전했다.
정부도 기술침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지난 1일 기술탈취 근절 방안 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 중 기술보호 전담인력을 보유한 곳은 전체의 약 37%에 불과하고, 기술보호 역량수준도 대기업 대비 65% 수준"이라며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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