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포스트 주담대 시대, 은행-정치권 동상이몽

사진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사진=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택담보대출 같은 손쉬운 이자놀이, 이자수익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 달라"며 은행권을 향해 일침을 가하자마자 금융위원회가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를 소집해 국내 5대 금융권 협회장을 불러 모았다. 은행부터 제2금융권까지 부동산 불패 신화에 올라타 호의호식하던 시절은 이제 끝이구나 싶다.

그렇다면 '포스트 주담대 시대'의 은행은 어떤 모습일까. '코스피 5000'을 공약한 이 대통령이 바라는 것처럼 '투자하는 은행'이 새로운 미래일까. 이 대통령의 투자 확대 요구가 대출하는 은행, 즉 상업은행을 투자은행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닐 테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방향성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투자하는 은행은 은행이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업권별 분리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은행의 금융투자업 진입에 많은 제약이 있다. 규제 완화로 은행의 금융투자업 겸영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지만 투자업 중 금지 업무도 있고 은행의 과도한 고위험 투자를 막기 위해 유가증권 투자의 한도와 종류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은행이 투자를 확대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행은 대출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고, 위험의 종류가 다른 금융업종의 겸업은 금융지주회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국내 시중은행은 자신이 설립한 금융지주회사제도를 통해 지금도 열심히 투자에 매진하고 있다. 은행이 이자놀이로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은 지주회사를 거쳐 금융투자업을 본업으로 하는 다른 자회사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위가 생산적 금융에 진심이라면 은행의 이자놀이를 탓하기 이전에 은행의 손을 떠난 자금이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투자에 사용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은행의 고위험 자산 투자는 제약이 많지만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는 이미 오래전에 은행 업무로 인정받았다. 투자 확대는 어려워도 투자상품 판매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예금하러 은행 창구를 찾은 고객의 마음을 돌려 펀드에 가입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은행은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수수료를 챙기고 쏟아지는 이자놀이 비난을 피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은행이 본업인 이자장사는 제쳐두고 투자상품 장사에 매진하는 것이 대안일까. 이미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은행의 수수료 수익 극대화 전략은 어김없이 불완전판매 사고로 이어져 은행 불신을 자초하는 패착이 됐다. 그렇다고 선진국 은행처럼 계좌유지수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은행 계좌는 언제나 공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복되는 불완전판매의 트라우마 탓인지 수수료 수익 전략에 확신이 없는 은행권이 스스로 선택한 포스트 주담대 시대의 새로운 길은 비금융업 진출이다. 알뜰폰 사업, 음식배달업, 부동산중개업 등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IT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해 문어발식 확장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 길에는 은산분리라는 거대한 제도적 장애물이 놓여 있다. 그걸 뛰어넘는 것이 기대난망인 데다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는 은행 본연의 기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생산적 금융이 유행어가 되고 인내자본, 모험자본이란 말은 무성해지는데 은행권, 정치권, 금융당국이 모두 길을 못 찾는 건 마찬가지고, 생각도 제각각이다. 한국 경제에 절실한 '생산적 금융'은 온데간데없고 교육세율 인상으로 위장한 횡재세 도입으로 퉁 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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