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미국의 관세 조치에 맞서는 한국의 생존 전략

경기도 평택항에 쌓인 컨테이너사진연합뉴스
경기도 평택항에 쌓인 컨테이너[사진=연합뉴스]
중국의 SF 작가 류츠신의 '삼체' 2권, 암흑의 숲에서 인류는 외계 문명 삼체인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독특한 전략을 고안한다. 바로 '검잡이(Swordholder)' 시스템이다. 이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 최종 무력 대응 권한을 부여해 삼체 문명에 대항한다는 초유의 생존 전략이다. 검잡이는 예측 불가능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궁극적 억지력을 가진 존재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한 국제 경제 질서는 삼체 세계관에서 인류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안보’와 ‘공정 무역’이라는 명분 아래, 반도체·배터리·철강 등 주요 전략 산업에 대해 점점 더 노골적이고 무차별적인 관세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삼체 문명은 끊임없는 불안 속에 살아간다. 그들의 모성은 세 개의 태양이 무작위로 움직이는 혼돈계에 속해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소멸과 재앙이 반복된다. 문명을 축적해도 어느 순간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리는 절망 속에서 삼체인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별, 더 안전한 환경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절박함에 빠진다.

이런 삼체인의 결정은 본질적으로 정복을 위한 ‘공격’이라기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선제적 자기 보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관세 조치도 이와 닮아 있다. 세계 경제의 판도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기술 패권 경쟁은 ‘존속의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은 자국의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 선제적 제약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두 문명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검잡이의 검은 삼체 문명뿐만 아니라 인류 역시 절멸로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이 절대적인 힘은 불균형을 되레 안정시키는 균형점 역할을 한다. 언제든 삼체를 향해 치명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삼체 문명은 무분별한 침공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검잡이는 바로 그 가능성과 긴장의 실체이자 상징이다.

이 메커니즘은 오늘날의 경제 질서에도 통한다. 미국의 무차별적 관세와 규제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AI(인공지능), 반도체, 이차전지, 친환경 소재 등 핵심 산업에서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미국조차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관세 장벽과 기술 블로킹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검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뿐이다. 

이는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특정 기술과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 단순한 경쟁 우위가 아닌, 대체 불가능한 전략 자산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검잡이의 힘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여온 전략을 탈피해야 한다. 기술 자립, 공급망 다변화, 핵심 소재·부품의 내재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 타깃'이 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패이자 칼날이다.

더 나아가 미국 중심의 질서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유럽, 아세안, 중동 등과의 다자 전략적 협력관계도 넓혀야 한다. 변화무쌍한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의 생존을 미국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 없다.

검잡이는 그 특성상 외롭고 위험한 자리다. 마찬가지로 기술 자립과 독자적 산업 전략을 추구하는 길은 단기적으로 어렵고, 국내외 반대 급부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길을 외면하면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관세, 또 다른 조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소설 삼체에서 인류는 검잡이를 통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생존을 위해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관세라는 외부 위협 앞에서 기술과 전략의 칼을 벼리며 우리의 검을 스스로 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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