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2026년도 정부예산안이 확정되면서 ‘헌 부대에 담긴 첫 번째 새 술’이 국회 심의에 들어갔다. 전년 대비 약 8.1% 증가한 728조원 규모로 첫 번째 700조원대 예산이기도 하다. 총량으로는 대내외적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은 데다 ‘3년의 겨울잠’을 벗어나 추격경제가 아닌 선도경제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부응하는 ‘적극적 재정’의 기본구상에 부합되는 규모로 보인다. 세부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연구개발(R&D)에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R&D 예산은 19.3% 늘어난 35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AI 분야에만 10조1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소버린 AI를 구축하고 기술과 미래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여 혁신 기반을 마련하며 경제역량의 체질개선을 꾀함으로써 잠재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의지는 의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따라 전체 예산안이 공개됨으로써 모든 국민이 예산안을 감시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충족되었다. 지금까지 기재부는 전면적인 공개가 아니라 예산안에 관한 해설만을 언론에 공표함으로써 사실상 ‘정보독점’에 기초하여 예산 관련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왔다. 방대한 예산 규모는 물론 구체적 사용처를 식별하기 어려운 예산항목 등도 예산감시가 전문영역에 속함을 경고하고 있다. 다만 정부예산 중 경직성 경비가 80%가량 차지한다는 사실은 예산감시의 어려움을 한결 덜어줄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국회에 의한 예산심의는 정부의 편성권을 견제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급기야 편성권을 정파적으로 오남용하는 기재부의 횡포에 정권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했다. 이 병폐가 예산기능을 기재부에서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가져왔다. 이에 그치지 말고 국민주권정부는 수년 전부터 수십조 원 규모의 세계잉여금 또는 세수결손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와 여론이 요구해온 세수추계방식의 공개를 통해 전문가와 여론의 검증을 받고 국가재정의 정당성도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전체 정부의 예산편성에서 구체적으로 낭비와 비효율 요소를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해도 국회심의 과정에서 강화되어야 하는 활동임에는 틀림없다. 윤석열 내란의 동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수활동비’의 행방이 궁금증을 낳기도 한다. 정부 발주 사업이나 민간위탁사업에서 ‘중간착취’를 배제하는 포괄적인 개혁도 ‘한국형 기업국가’를 ‘국민주권국가’로 전환하여 내수를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고민하는 김에 보다 근본적으로 공급자(정부)가 아니라 수요자(주권자) 중심의 정책수단도 발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총 70조원이 편성된 저출산대책으로 인구감소지역에서 아동수당을 매달 최고 13만원까지 지급하고 수혜 연령을 7세에서 8세로 높이면 ‘출생률’이 정말 높아질까? 아이돌봄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200%에서 250%까지 확대하면 청년부부의 출산 의지를 북돋을 수 있을까? 예산안에 포함된 모든 저출생 대책이 이미 태어난 어린이나 그 부모를 수혜대상으로 하는 대책들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남녀)에게도 짝을 찾고 자녀를 가질 유인이 될지 한 번쯤 물을 필요도 있어 보인다. 청년 자산 형성을 위해 신설되는 청년미래적금은 소득 6000만원 이하 19~34세 청년이 월 50만원 한도에서 납입하면 정부가 6% 또는 12%를 매칭해 지원하는 제도이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은둔·고립청년은 물론 실업청년을 차별할 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에서 작지만 불평등을 오히려 확대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청년층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편의적인 예산안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에는 AI 기반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산기반의 확충이 사실상 유일한 활로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재양성시스템은 의대 정원문제가 초래한 혼란상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디지털·AI 인재충원의 두 축을 이루는 국내 인재 양성과 해외 인재 유치에 의존하는 계획은 과거의 관행을 답습한 모양새여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바이오혁신토론회’에서 정은경 장관이 발표한 ‘바이오 인재강국을 위한 현장실전형 인재양성’ 프로그램도 2027년까지 현장수요 인력 11만명 이외에 ‘해외 우수인재유치’로서 석학 30명, 중견 500명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런데 국내 인재들은 ‘살기 싫어서’ 해외로 탈출하는 나라에 해외 인재가 ‘살겠다’면서 기꺼이 올지는 의문이다.
산업인력공단 자료에 따르면 해외취업자 수는 2019년 6816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 3727명까지 감소했지만 2024년에는 다시 5720명으로 증가했다. 미국 간호사시험 주관기관(NELEX)에 따르면 2019년 코로나19 확산으로 198명에 지나지 않던 미국 간호사시험 응시자가 2023년에는 3301명, 2024년 2634명으로 폭증했다. 게다가 트럼프정부의 ‘관세전쟁’으로 국내 기업의 미국 유출이 가속화되면 국내 인재 유출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이 미국 대학을 졸업하는 한국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한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미국 의회에 요청해줄 것을 건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해외 인재 유치보다 국내 인재의 유출 방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에는 인재양성보다 더 시급한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그냥 쉬었음’ 인구가 50만4000명에 이르렀다.
예산은 정부가 국민에게 행한 공약 등 약속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수단이다. 정권교체, 그것도 내란진압에 의한 정권교체는 당연히 전임 정부와 차별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정부는 김대중정부와 마찬가지로 소수파정부이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정부 중에서도 두드러진 소수파정부이다. ‘국민의 정부’가 IMF 외환위기의 국난극복의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면 이재명정부는 내란 극복의 과제를 머리에 이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지식정보화’의 IT혁명으로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처럼 국민주권정부도 헌정질서를 내란 극복과 국민통합의 원칙이자 기틀로 확고히 함과 동시에 AI디지털화로 경제를 또다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모처럼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는 극우 파시즘의 부단한 도발은 국민주권정부에는 위협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예산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주권 예산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위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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