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 스캠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중국계 범죄조직은 고액 연봉과 좋은 근무 조건을 미끼로 한국인을 유인한 뒤 감금과 폭행, 고문 등을 통해 로맨스 스캠, 보이스피싱, 투자 사기 등 각종 범죄 행위를 강요했다.
이들의 활동은 수도 프놈펜에서도 이루어졌지만, 대규모 범죄 단지는 시아누크빌(Sihanoukville)에 자리했다. 이 도시가 범죄조직의 핵심 거점이 된 배경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캄보디아 제1의 수출입항인 시아누크빌에는 중국과 합작해 건설된 경제특구가 조성되어 있었다. 2013년 일대일로 사업이 본격화하자, 이 지역은 중국 자본의 핵심 투자처로 부상했다. 백개가 넘는 제조업체가 유입했고, 마카오를 대체할 관광지로 주목받으면서 카지노, 호텔, 콘도미니엄 등이 속속 들어섰다. 이어 온라인 카지노 업체도 대거 진입했다.
시아누크빌은 일대일로가 남긴 어두운 유산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자본에 기대어 관광 산업의 도약을 꿈꿨던 캄보디아에 남은 것은 완공되지 못한 건물, 통제 불가능한 범죄조직, 만연한 부정부패, 내국인 역차별, 그리고 추락한 국제적 위상뿐이다.
일대일로 사업이 처음 시작될 당시 이러한 부정적 결과를 예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중국 자본의 급격한 유입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그 경고 중 하나가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는 일대일로 사업 후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된 국가 중 하나이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 건설은 물론, 자원 개발과 1차 가공을 위한 경제특구 조성에도 막대한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
일대일로 사업의 문제점이 가장 먼저 가시화된 지역은 술라웨시(Sulawesi)섬 중부의 산업단지였다. 이곳에는 채굴된 니켈을 정제·가공하는 인도네시아–중국 합작 기업이 설립됐다. 2020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곳에 4만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허위 사실로 밝혀졌지만, 새로 생긴 일자리 대부분이 중국인에게 돌아가고 현지인에게 실질적 이익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불신과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고조됐다.
이 같은 인식 때문이었는지, 2023년 이곳에서는 현지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 간의 갈등이 폭동으로 번지며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5년에도 유사한 사태가 재발해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시설 파괴로 이어졌다. 공권력이 개입함으로써 폭동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정부가 중국 편을 든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경찰은 현지 노동자에 대한 강경 대응을 자제했다.
이처럼 반중 정서가 팽배해지자, 중국 기업과 노동자는 조심스러운 자세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시아누크빌과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인 중심의 게토가 형성되거나, 이들이 지역 엘리트와 유착하는 상황이 결과하지 않았다.
중국 자본 유입이 중국인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캄보디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대일로의 문제점에 직면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자카르타와 반둥(Bandung)을 잇는 동남아 최초의 고속철도 건설 사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속철 논의는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으며, 2014년 조코위 대통령의 취임 후 본격화됐다. 초기에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사업 타당성 조사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2015년 고속철 입찰이 시작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이 다크호스로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이 일본의 낙찰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중국의 승리였다.
중국은 일본보다 약 7억 달러 낮은 55억 달러의 건설비를 제시했다. 반면, 대출 금리는 2%로, 일본이 약속한 0.1%에 비해 훨씬 높았다. 기술력에서는 일본이 우위였지만, 중국은 기술 이전을 보장하며 약점을 보완하려 했다. 또한 일본이 정부 간 거래(G2G)를 요구한 반면, 중국은 기업 간 거래(B2B)를 제안하면서 정부의 지급보증 부담을 덜어주었다.
입찰 내용에 차이는 있었지만, 중국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정치적 고려였다. 인프라 확충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조코위에게 있어 일대일로 자금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중국과의 협력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고속철 사업은 향후 추가 자본 유입을 보장하는 신뢰의 증표로 작동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시작된 고속철 공사는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토지 수용 문제로 인해 공사는 완공 예정 시점인 2019년을 훌쩍 넘어섰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라 공사가 지연되자 중국계 은행으로부터의 대출 자금이 소진되었고, 사업은 중단 위기에 처했다. 이때 구원 투수로 나선 이는 또다시 조코위였다. 그는 애초에 내세운 기업 간 거래 원칙을 철회하고, 부족한 투자금과 추가 경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 할 것을 결정했다.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면서 공사는 다시 속도를 냈고, 2023년 마침내 완공됐다. 조코위 임기 내에 마무리된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는 최고 시속 350㎞로 143㎞ 구간을 연결하며 개통 후 2년여의 기간 동안 큰 문제 없이 운행되었다.
한동안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던 고속철은 최근 전개된 몇몇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첫째, 정부가 자카르타–수라바야(Surabaya) 고속철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둘째, 고속철의 인도네시아 측 대주주인 철도공사가 국부펀드의 관리 하에 있기에 그 부채 역시 국부펀드 자금으로 상환해야 한다는 지침을 프라보워 대통령이 내놓았다. 셋째, 고속철 건설비용이 중국 본토의 건설비보다 세 배 이상 높았음을 지적하면서, 전직 장관이 부정부패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속철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자, 그 운영사의 재정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었다. 정확한 회계 자료에 기반한 수치는 아니지만, 제시된 손실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2024년 고속철 운영사의 적자액은 4조1900억 루피아(약 3600억원), 2025년 상반기 적자액은 1조6200억 루피아(약 1400억원)에 달했다. 매년 갚아야 하는 이자는 2조 루피아(약 1700억원)로 추정된 반면, 2024년 연간 승객 600만명 기준의 수입은 1조5000억 루피아(약 1300억원)에 불과했다. 운행 수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적자 상황이 밝혀진 것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논의는 다시 10년 전, 입찰 당시로 되돌아갔다. 0.1%의 초저금리를 제시한 일본 대신 중국을 선택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지적됐는데, 이는 비난의 화살을 조코위 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조코위 역시 입을 열었다. 그는 고속철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되며, 깨끗한 공기, 온실가스 감축, 지역 균형 발전 등 사회적 투자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기업 간 거래 원칙을 고수하며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했던 과거의 태도와는 상반된 주장이었다.
프라보워 정부는 책임 공방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러 해결 방안이 정부 인사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뚜렷한 방향성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때로 중국과의 부채 구조조정을 국부펀드에 전적으로 위임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 경제의 상환 여력을 강조하며 고속철 채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임을 부각하기도 했으며, 부채 문제 해결에 정부가 뒷짐지고 서있지 않을 것임을 공언하기도 했다.
이제 여론의 초점은 중국과의 부채 조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결과가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방향에서 결정된다면, 정국은 다시 요동치게 될 것이다. 조코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이전 정부 인사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부패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고속철을 둘러싼 최근 논란은 일대일로 참여의 위험 중 하나로 지적되어 온 ‘부채의 덫’(debt trap)에서 인도네시아가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일정 정도 부채 상환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거나 고속철 운영권을 넘겨야 할 처지에 놓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적자 구조가 장기화할 경우 인도네시아 철도공사가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자카르타–반둥 고속철은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고 투명성이 담보되지 못할 때 외자에 기반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지 보여줄 전형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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