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론스타 승소율 '3%', 누가 어떻게 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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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한국 정부가 론스타와의 국제투자중재(ISDS) 취소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2022년 한국이 2억1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정이 나왔지만, 이번에 이 판정이 뒤집혔다. 전 세계 ISDS 사건에서 ‘취소’가 인정되는 비율이 약 3%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다. 그 좁은 문을 한국이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을 뒤집은 게 아니라, 판정문 속에 숨어 있던 ‘설명되지 않은 틈’과 ‘논리적 단절’을 정확히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왜 '3%'밖에 안 뒤집힐까?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특징은 간단하다. 판정 내용이 틀렸다고 해도, 그 자체는 뒤집힐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사실관계를 얼마나 잘 설명했는지 △손해액 계산이 옳았는지 판단이 합리적인지 이런 것들은 취소 절차에서 다루지 않는다.

취소가 인정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판정문이 사건의 핵심을 설명하지 않았을 때 △정부의 중요한 주장을 아예 검토하지 않았을 때 △결론과 근거가 서로 이어지지 않을 때 △절차 규칙을 어겼을 때만 해당된다.

즉, 판정문을 ‘다시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라 ‘판정문 자체를 검사하는 절차’이다. 이렇기 때문에 전 세계를 통틀어 ICSID 판정이 취소되는 비율은 약 3%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이 한국 정부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론스타 사건은 사실관계·손해액·정책 해석 문제가 중심이었는데, 이런 쟁점은 취소사유에 거의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찾은 빈칸…판정문 속 ‘끊어진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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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판정이 뒤집힌 핵심은 중재판정부가 결론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설명했어야 할 부분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측 대리인단은 판정문을 처음부터 다시 해체하듯 살펴보며, 이 결함이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판정 구조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라는 점을 포착했다.

그중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정부의 핵심 항변이 사실상 평가되지 않은 채 넘어간 부분이다. 정부는 매각 지연의 주요 원인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시장 불확실성 등 외부 요인에 있었다는 점을 일관되게 제출했고, 감독당국의 승인 절차 역시 내부 기준에 따른 정당한 재량 행위라는 자료도 제시했다. 그러나 판정문에는 이 항변이 어떤 기준으로 검토됐는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당사자 주장을 실질적으로 심리하지 않았다는 취소사유에 직접 연결되는 지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판정문 내부에서 이유와 결론이 연결되지 않는 단절이었다. 중재판정부가 한 면에서는 “정부 조치가 지연의 주요 원인”이라 적고, 다른 면에서는 같은 조치가 “정당한 재량 범위 내 행위”라고 평가하면서도, 두 서술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특정 조치가 합법적 재량이라면 그것이 곧바로 국가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지연 원인과 재량성 사이에 어떤 인과성이 있는지 별도의 논증이 필요하지만 그 부분이 비어 있었다. 취소심에서 “내부 모순 또는 이유 불비”로 지적된 대목이다.

손해액 산정 부분에서도 핵심 전제의 근거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남았다. 중재판정부는 특정 시점에 매각이 가능했다고 가정해 손해액을 계산했지만, 왜 그 시점을 기준점으로 삼았는지, 실제 시장 상황에서 매각 가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손해 산정의 출발점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였다.

한국 측 대리인단은 이처럼 서로 다른 위치에 흩어져 있던 결함들을 모아 하나의 ‘논리 지도’처럼 재구성해 취소위원회에 제시했다. 문장 단위로 판정문을 분해해 어떤 전제가 생략됐고, 어디에서 논리 연결이 끊겼으며, 어떤 항변이 검토되지 않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배열한 것이다. 그 결과 판정문 전반에 “이유 제시 의무가 충족되지 않은 영역이 다수 존재한다”는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이 지점에서 사건의 향방이 결정됐다.
 
판정문을 해부한 ‘원팀’…태평양–A&P의 전략 통했다

정부 대리에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BKL)이 참여했다. 태평양은 2012년 론스타가 ICSID에 중재를 신청한 직후부터 미국 로펌 아놀드앤포터(Arnold & Porter)와 함께 정부를 대리해 온 핵심 전력이다. 태평양은 이번 취소심을 두고 “지난 13년간 쌓아온 대응 역량을 총동원해 국가적 손실을 완전히 방어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태평양은 국제중재, 금융, 조세, 국제통상 등 다양한 전문분야를 통합한 ‘원팀(One Team)’ 전략을 구사했다. 국제중재 분야의 김준우·김우재 변호사, 금융 분야의 서동우·양시경·이재인 변호사와 김영모 외국변호사, 조세 분야의 유철형 변호사와 김혁주 세무사, 국제통상 분야의 권소담 변호사와 정규상 외국변호사가 대응을 맡았다.

이들은 2022년 판정문 300쪽을 문단 단위로 재배열하며 △논리가 이어지지 않는 부분 △정부 항변이 누락된 대목 △손해액 산정의 전제가 되는 가정의 모호성 등을 구조적으로 드러냈다. 판정문 속 빈칸을 역추적해 ‘이유 제시 부족’을 정밀하게 입증한 분석틀이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다.

김준우 변호사는 “정부 각 부처와 국내외 대리인이 13년간 정보를 일관되게 공유하며 원팀으로 대응한 것이 승리의 핵심”이라며 “분쟁 장기화로 정부 담당자가 바뀌는 동안에도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일관성 있는 분쟁 전략을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정으로 국제중재를 포함한 태평양 전체의 총체적인 역량을 확인 받게 됐다”며 “론스타 분쟁이 국제중재의 중요성을 체감한 계기가 된 만큼 우리 전문가들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정말 어렵고 복잡하면서 까다로운 일도 태평양에 맡기면 해결된다는 신뢰를 만드는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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