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② |인간·문화·자연] '왕과 사는 남자' 빼앗긴 왕관, 그러나 지워지지 않은 이름

왕과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역사의 물줄기를 1457년 영월로 돌려 보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유배지 청령포. 물안개가 낮게 깔린 새벽, 소년의 어깨는 유난히 왜소해 보인다. 그는 한때 조선의 임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죄인의 옷을 입은 채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그 장면에서 우리를 붙든다. 왕관을 썼던 열일곱 소년, 단종. 숙부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밀려난 그의 추락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존재를 단계적으로 지워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것을 폐위라 부른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한 인간에 대한 가장 잔혹한 ‘강등’으로 번역한다. 왕에서 노산군으로, 다시 서인으로 내려가는 과정은 단순한 직위 하락이 아니라 인격의 해체다. 이름은 바뀌고, 의전은 사라지며,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진다. 그 순간 인간은 사회적 죽음을 경험한다.
 
주공과 세조, 권력의 두 길
이 영화를 깊게 읽으려면 동아시아 정치 사상의 한 장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주나라의 명재상 주공이다. 주공은 형인 무왕이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성왕을 대신해 섭정하며 7년간 나라를 지켰다.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것을 사유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어린 군주를 보필하며 질서를 지켜 냈다.
 
공자는 주공을 군자의 표상으로, 덕치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권력은 쥐는 것이 아니라 맡는 것이며, 사사로이 취하는 순간 정당성을 잃는다는 것이 그 정신이다.
 
이에 비해 세조의 길은 달랐다. 그는 능력이 있었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정치적 통찰도 지녔다. 그러나 왕위를 얻는 과정은 피와 배신을 동반했다. 대신 한명회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어린 조카를 밀어내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조선은 강력한 통치 체제를 갖추었지만, 도덕적 상처 또한 깊어졌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누구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두 길을 나란히 세워 놓고 묻는다. 힘으로 얻은 권력은 과연 완전한가. 도덕을 잃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인가.
 
청령포의 바람, 소년의 눈빛
이 작품이 관객의 가슴을 적시는 이유는 웅장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고요한 장면들 때문이다.
청령포의 모래밭에 홀로 서 있는 단종.
 
노을이 붉게 물든 강가에 앉아 무심히 물을 던지는 모습.
밤이 깊어지면, 등불 아래에서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표정.
그 곁에는 끝까지 임금을 보필하는 충직한 신하 엄홍도가 있다. 그는 권력을 되찾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세상은 등을 돌렸지만, 단종을 사람으로 대하는 한 사람이 남아 있다. 그 존재가 영화의 온기를 만든다.
 
반면 세조의 궁정은 어둡고 무겁다. 화려한 의복과 금빛 장식 속에서도 공기는 차갑다. 왕좌에 앉은 세조의 눈빛은 흔들린다. 승자는 되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한명회가 속삭이는 정치적 계산과 권모술수는 권력의 냉혹함을 상징한다.
 
이 대비는 극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강물의 잔잔한 흐름과 궁정의 긴장감이 교차하며,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흔든다.
 
강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
현대의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팀장에서 팀원으로, 책임자에서 배제된 사람으로 내려오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강등은 직함을 잃는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좌표가 흔들리는 경험이다.
영화 속 단종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끝내 비굴해지지 않는다. 권력은 사라졌지만, 품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직이 당신의 계급장을 뗄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이 쌓아 온 시간과 인간적 존엄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이 단순한 진실이 영화의 핵심이다.
 
단종이 사약을 마주하는 장면은 처절하다. 그러나 감독은 절규보다 침묵을 택한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한 인간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신다.
 
왜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가
570년 전의 이야기에 왜 오늘의 우리가 눈물을 흘릴까.
첫째, 추락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둘째, 배신의 칼날은 언제나 믿었던 사람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럼에도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고귀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정치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패배하지 않았다. 세조는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거웠다. 주공이 선택한 길과 세조가 선택한 길 사이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기억되는 이름,단종과 엄홍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한다. 그러나 시간은 반드시 승자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때로는 패자의 눈빛을 더 오래 기억한다.
단종의 이름은 비극으로 남았지만, 동시에 순결한 상징으로 남았다. 세조의 이름은 강력한 군주로 기록되지만, 논쟁과 그림자를 함께 안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왕관은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빼앗기지 않는다.
 
청령포의 바람은 오늘도 분다. 그 바람 속에서 소년의 눈빛이 떠오른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그 눈빛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극장을 나서며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인가,아니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승리인가.이 질문이 남는 한, 이 영화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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