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열여섯 살 K팝 가수 쯔위가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논란에 "중국은 하나 뿐"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 사과 영상이었다. 한국 대중은 "왜 이것이 사과할 일이냐"며 소속사의 저자세를 비판했지만, 정작 중국 여론은 "진정성이 없다"며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한국인에게 사과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유화적 손짓'이지만, 중국인에게 사과란 잘못을 공식 시인하고 책임의 떠안겠다는 '항복 선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엇갈림은 6년 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도 반복됐다. 쇼트트랙 판정 논란 직후 한국은 사과를 요구했고, 중국은 "왜 사과해야 하냐"고 맞받아쳤다. 충돌의 본질은 판정의 공정성 이전에, 양국이 '사과'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같은 말을 쓰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둔갑
한쪽이 사과를 요구하면 다른 쪽은 요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패턴은 한·중 갈등에서 반복된다. 문화 논쟁, 역사 갈등, 스포츠 판정 시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된다. 같은 단어를 쓰지면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사과’와 중국어 ‘다오첸(道歉)’은 사전적으로는 대응되지만, 문화적 작동 방식은 판이하다. 한국에서 사과는 대화의 시작이자, 관계 회복을 위한 유화제다. 잘못의 크고 작음을 떠나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중국에서 ‘다오첸’은 모든 논쟁의 최종 결론이자 심판에 가깝다. 여기에는 '멘쯔(面子, 체면)'의 손상이 따른다. 중국 사회에서 체면은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사회적 평판과 위신을 뜻한다. 공개적 사과는 곧 '공개적 굴복'이자 '체면의 파산'으로 읽히기 쉽다. 특히 위계 관계에서 상급자의 사과는 질서 자체를 흔드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사과를 거부하는 것이 일종의 자기보호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명동실이(名同實異): 오해의 가속 멈추는 법
이 때문에 한국인은 "왜 저렇게 뻔뻔한가"라고 느끼고, 중국인은 "왜 굴복을 강요하는가"라고 받아들인다. 문제는 이 간극이 인터넷 알고리즘을 타고 증폭된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와 더우인, 유튜브 등을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가 우선 노출되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이용자끼리 '정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상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니 맥락은 사라진 채 오해만 재생산되는 것이다.
상대의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곧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체면 문화'를 안다고 해서 한국의 정당한 문제 제기가 부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같은 이름의 말을 쓰고 있다고 믿는 순간 오해는 시작된다. 결국 한중 갈등의 핵심은 '명동실이(名同實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명동실이, 이름은 같지만, 실체는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한국은 사과를 받아야 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기지만, 중국은 사과하는 순간 모든 책임의 굴레를 쓴 채 논의가 끝난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문법이 충돌하기에, 갈등은 접점 없는 평행선만 달릴 뿐이다.
결국 외교와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성급한 요구보다, 상대의 문법을 먼저 읽는 ‘차가운 전략적 이성’이다. 사과를 '굴복'이라 믿는 상대에게 도덕적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자원 낭비에 가깝다. 오히려 '체면'과 '실익'이라는 중국식 문법을 역이용해야 한다.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치러야 할 유·무형의 손실을 제시하거나, 사과라는 단어 대신 '유감 표명'이나 '공동 대응'이라는 우회로를 열어줘서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감정의 언어는 적을 만들고, 협상의 언어는 결과를 만든다.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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