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호황 국면에 들어선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새로운 공급망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 핵심 소재와 장비 일부가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하는 헬륨의 64.7%가 카타르에서 수입된다. 헬륨은 반도체 웨이퍼 냉각에 사용되는 핵심 산업용 가스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쓰이는 브롬 역시 97.5%가 이스라엘에서 들어오는 등 일부 소재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위치해 있다는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 이 지역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측정·검사 장비 생산 거점으로, 일부 장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에도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소재와 장비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특정 품목의 수급 차질이 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소재와 장비 등 산업 생태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일부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핵심 재료 몇 가지만 부족해도 생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상황 점검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헬륨과 브롬, 반도체 측정·검사 장비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14개 품목을 중심으로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공급망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부 장비와 부품의 경우 미국 등에서 대체 수입이 가능하고 브롬 등 정밀화학 소재 역시 국내 생산과 재고 활용 등을 통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별 수급 상황을 점검하면서 필요할 경우 대체 공급선 확보와 물류 지원도 추진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당장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핵심 소재와 장비에 대해 일정 수준의 재고를 확보하고 있고 공급망도 다변화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간접적인 영향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상승은 해상·항공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반도체 장비와 소재 운송 비용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대규모 전력과 산업용 가스를 사용하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라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실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산 네온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반도체 핵심 소재 수급 불안이 커지고 가격이 급등하는 등 공급망 충격이 발생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다만 중동 상황이 장기화하면 물류와 에너지 비용 상승 등으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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