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9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조치에 대해 제기했던 301조 청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USTR이 미국 기술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301조 조사 가능성을 시사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단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별도 조사는 중복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두 투자사는 지난 1월 22일 한국 정부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범정부 차원의 차별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USTR에 301조 조사 개시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 미국 기업에 대한 “부당하고 차별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청원 철회가 문제 제기 자체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투자사들은 별도 성명을 통해 “이번 사안이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간 의미 있는 협의를 촉발했고 미 의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이 사안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통상 당국 간 협의에서도 거론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각각 만나 관세 및 비관세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여 본부장은 쿠팡 관련 301조 청원 문제가 한미 통상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방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근거였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적용에 제동을 건 이후, 한미 간 관세 합의 이행 상황과 향후 통상정책 방향을 점검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미국이 무역법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한 통상 압박 가능성을 시사하는 상황에서 쿠팡 사안 역시 단순한 기업 분쟁을 넘어 국가 간 통상 논의의 일부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통상 채널에서의 청원이 철회됐다고 해서 분쟁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적 분쟁은 본격화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5일 미국 투자자들이 제출한 중재의향서(notice of intent)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로펌 피터앤김과 미국 로펌 아놀드앤포터 케이 스콜러 LLP를 정부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미 FTA에 규정된 90일 협의 기간 동안 이들 법률자문단과 함께 청구 내용을 검토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분쟁의 직접적 계기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의 조사와 규제 대응이 외국인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한 차별적이고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쿠팡 지분 가치가 15억 달러를 넘는다며 정부 조치로 상당한 투자 손실 위험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쿠팡은 한국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지만 미국 델라웨어에 설립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은 한미 FTA상 투자자 보호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후 폭스헤이븐 캐피털, 듀러블 캐피털, 에이브럼스 캐피털 등 다른 투자자들도 중재의향서를 추가로 제출하면서 잠재적 청구인 범위는 확대된 상태다.
이번 사안을 바라볼 때는 두 가지 문제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한국 정부의 개인정보 유출 대응이 실제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달리 취급한 차별적 조치였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미국 투자자들이 이를 국제 통상·투자 규범 위반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는 가에 있다.
현재로서는 투자사 측의 주장과 한국 정부의 정당한 규제 권한 행사 논리가 정면으로 맞서 있는 상황이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실제 조치의 내용과 절차, 비교 대상, 피해 규모 등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안이 더 이상 쿠팡 한 기업의 규제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 서비스 규제와 외국인 투자자 보호, 통상 압박, 그리고 한미 간 제도적 신뢰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301조 청원 철회는 갈등의 종료라기보다 분쟁의 무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한국 정부 역시 감정적 대응이나 정치적 해석에 앞서 국제 규범과 비차별 원칙에 기반한 차분하고 치밀한 대응으로 일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통상 질서와 투자 신뢰를 동시에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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