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AI 시대의 진짜 혁신, '구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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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DB]

인공지능(AI) 경쟁이 ‘보조금 전쟁’으로 번지는 순간 산업정책은 두 가지 구조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첫 번째는 정부가 특정 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면 시장의 관심은 기술 혁신보다 정책 신호와 로비에 쏠린다. 경쟁의 축이 기술에서 정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둘째, 보조금은 통상 ‘얼마를 투자했고, 무엇을 생산했는가’라는 산출 지표로 평가된다. 하지만 AI 경제의 병목은 생산량의 부족이 아니라 데이터 접근과 책임 배분, 경쟁 질서의 왜곡에서 발생한다.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누가 책임을 지는지, 시장 참여자가 어떤 규칙 아래 상호작용하는지가 혁신의 속도를 결정한다. 따라서 AI 시대 산업정책의 핵심은 자금을 배분하는 일이 아니라 경쟁과 연결의 조건을 설계하는 일, 즉 ‘규칙 설계(rulemaking)’다.

가장 시급하게 수립해야 할 규칙은 데이터 접근과 상호 운용성이다. AI의 생산성은 데이터·모델·서비스가 얼마나 개방적으로 연결되는지에 달려 있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는 구조에서는 혁신이 경쟁을 통해 확산되지 못한다. 유럽이 데이터 이동·전환과 상호 운용성 요구사항을 법으로 못 박는 이유는 경쟁을 새로운 진입보다 탈출 가능한 구조에서 만들기 위해서다. 진입보다 탈출이 어려운 시장에서는 기술이 아니라 지배력이 축적된다. 공정한 데이터 접근 규칙, 표준화된 인터페이스, 전환 가능한 구조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산업정책의 핵심 장치다. 

두 번째는 책임과 위험 배분이다. 모델 오류로 인한 피해, 학습·추론 데이터의 유출, 알고리즘 편향이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순간 산업은 규제 불확실성에 묶인다. ‘사고가 나면 누구의 책임인가’가 불명확하면 기업은 보수적으로 변하고, 투자자는 가격을 높이며 정부는 사후규제로 과잉반응한다. 선진 규제는 기술을 금지하기보다 위험관리·기록·설명 가능성·감사체계를 통해 책임의 경로를 명확히 한다. 결국 혁신의 속도는 성능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신뢰가 좌우한다.

세 번째는 공정경쟁 장치다. AI 생태계는 인프라(클라우드·반도체·데이터)와 서비스(모델·앱·플랫폼)가 결합하기 쉽다. 이해충돌을 통제하지 못하면 시장은 과점으로 수렴하고 ‘혁신의 이익’은 폐쇄적인 생태계의 지대로 바뀐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거대 플랫폼에 대해 상호 운용성, 선택권, 자사 우대 금지 같은 경쟁규칙을 강화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산업정책의 목표가 ‘챔피언 만들기’가 아니라 ‘혁신이 계속 나오게 하기’라면 지배력 남용을 억제하는 규칙이 보조금보다 우선한다.

결국 산업정책의 평가는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질서의 형태에서 갈린다. 단기간에 유니콘이 몇 개 등장했는가, 시가총액이 얼마나 늘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성공이 어떤 경쟁 구조와 책임 체계 위에서 만들어졌는가다. 보조금으로 만들어낸 성공은 숫자로 남지만 규칙으로 설계한 성공은 구조로 남는다. 숫자는 경기 변동과 함께 사라질 수 있지만 구조는 다음 세대의 혁신을 준비한다. AI 시대의 산업정책은 챔피언을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챔피언이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것은 특정 기업을 키우는 전략이 아니라 특정 기업이 영원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설계다.

한편 정부의 역할은 승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가 교체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더 어렵고 더디게 보일 수 있다. 보조금은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주지만 규칙 설계는 시간이 걸리고 이해관계의 충돌을 동반한다. 그러나 기술 패권 경쟁의 시대일수록 조급함은 제도를 왜곡한다. 한국은 단순히 막대한 예산을 앞세운 주요국의 보조금 전쟁에 휩쓸리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거래 원칙과 공정한 경쟁 규칙을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규칙 설계자(Rule Maker)'가 되어야 한다. AI라는 거대한 기술적 전환기에 진정한 승자는 기술 자체를 소유한 자가 아니라 그 기술이 작동하는 시스템과 생태계를 설계한 국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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