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AI 시대 노동 해법, 갈등이 아니라 조정이다 — 노사정의 새로운 균형을 세울 때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 출범 정책 토론회에서 밝힌 발언은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노동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이 원하는 고용 유연성을 노동자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원칙은 갈등의 시대를 넘어 조정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유연성을 요구한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산업 구조 자체가 빠르게 재편된다. 고용 형태, 직무, 조직 구조 모두 과거의 틀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유연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반면 노동자에게 ‘유연성’은 종종 ‘불안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해고는 곧 생계의 단절이며,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다. 노동자가 고용 안정성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대통령의 표현처럼, “양쪽 다 그럴 만한 생각”인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충돌할 때 사회가 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단순한 협의 기구를 넘어, 시대 전환기의 ‘사회적 계약’을 설계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노동 질서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더 이상 ‘유연성 대 안정성’이라는 이분법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첫째,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이중 안전망’이 필요하다. 기업에는 인력 운영의 유연성을 보장하되, 노동자에게는 전직·재교육·소득 보전 등 실질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해고를 줄이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 해고 이후의 삶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직무 중심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연공서열 중심의 고용 체계는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직무와 역량에 기반한 유연한 이동 구조를 만들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력과도 직결된다.
 
셋째, 노사 간 신뢰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노동 갈등은 불신의 역사였다. 기업은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노동자는 희생 강요를 의심한다.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작동하기 어렵다. 노사정위원회는 단순한 이해 조정이 아니라 신뢰 구축의 장이 되어야 한다.
 
넷째, 정부는 중재자를 넘어 설계자로 나서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AI 시대의 노동 정책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산업 정책과 교육 정책, 복지 정책이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방향성 측면에서 옳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한 해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접근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균형을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걸맞은 ‘평화로운 현실 해법’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선언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 기구를 통해 새로운 노동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책 성과를 넘어 사회적 전환의 모델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갈등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조정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노동은 보호되어야 하고, 기업은 경쟁력을 가져야 하며, 국가는 그 균형을 설계해야 한다. AI 시대의 노동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풀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서로를 인정하는 데 있다.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5층 웨딩여율리에서 열린 한국노총 창립 제8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5층 웨딩여율리에서 열린 '한국노총 창립 제8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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