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국가의 방향을 드러낸다.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금지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속도와 경제의 미래가 달라진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과제는 분명하다. 기존의 사전 허가 중심 규제로는 더 이상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산업을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규제합리화위원회를 직접 주재하며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공식화한 것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규제를 줄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규제의 작동 방식을 바꾸겠다는 결정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된 것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먼저 움직이고 정부는 사후 관리에 집중한다. 이는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전환이 단순한 규제 완화로 이해된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핵심은 ‘완화’가 아니라 ‘재설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과 사후 규제의 역할을 명확히 나누는 일이다. 모든 영역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룰 수는 없다. 생명과 안전, 환경과 직결된 분야에서는 사전 규제가 유지돼야 한다. 반면 신기술과 서비스, 산업 혁신 영역에서는 사후 관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원칙은 단순하다. 위험은 사전에 막고, 혁신은 사후에 관리한다. 이 이중 구조가 작동할 때 네거티브 규제는 비로소 현실적인 정책이 된다. 사전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것도, 사후 관리에만 의존하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영역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정교한 설계다.
또 하나의 핵심은 책임이다. 자율이 확대된 만큼 기업의 책임은 훨씬 무거워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규제는 사전 통제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네거티브 규제 체계에서는 사후 책임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율은 방임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이 책임을 방기했을 경우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 사업 정지나 허가 취소와 같은 실효성 있는 수단이 작동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최고경영자에 대한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핵심은 균형이다. 자율은 넓히되 책임은 강화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의 신뢰가 유지된다. 규제의 본질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다. 기업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결국 네거티브 규제는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다. 사전 규제와 사후 관리의 균형, 자율과 책임의 결합, 규제 완화와 성장 조건의 연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규제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다.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설계와 실행이다.
규제의 문을 여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 문이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훨씬 더 정교한 구조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진정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두 축이 함께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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