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영업 독립성에 주주보호까지…'바늘구멍' 되는 중복상장

중복상장 현황
중복상장 현황

그동안 중복상장은 기업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알짜 사업부를 쪼개어 비상장 계열사로 만든 뒤 상장하면 막대한 자금 조달과 자산가치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LG그룹이 LG화학의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든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중복상장은 모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일반주주에게는 '안 좋은 일'이다. 중복상장이 없었다면 모회사가 누릴 이익이 자회사 상장으로 사라진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그간 주요 기업이 중복상장을 추진할 때마다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이 금융당국이 중복상장 원칙적 금지를 내세운 이유다. 16일 나온 규제 가이드라인을 보면 중복상장이 허용되는 예외조항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깐깐할 전망이다. 
 
"국내 중복상장 주요국 대비 과도"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공개세미나’에서는 강화된 심사 체계와 함께 주주 보호를 구체화할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단순한 요건 충족을 넘어 중복상장이 전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이 기업에 부과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먼저 나현승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중복상장 현황 발표를 통해 국내 중복상장 구조가 해외 대비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시가총액 대비 상장사가 보유한 타 상장사 지분 가치 비중은 한국이 18%에 달하는 반면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 중국(1.98%)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신규 상장 기준으로도 차이가 뚜렷하다. 2010~2021년 신규 상장 기업 가운데 약 20%가 중복상장 형태로 나타났으며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중복상장의 예외적 허용요건을 촘촘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방침이다. 고영호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정부 자본시장 정책의 4가지 키워드는 신뢰, 주주가치 중심 문화, 혁신, 수요 기반 확충”이라며 “중복상장 규율 역시 주주가치 문화를 어떻게 확산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또 “체크리스트만 충족하면 된다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 주주 보호가 이뤄지도록 거래소와 함께 제도를 설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현미경 심사 거쳐야 상장 허용
'모든 중복상장을 막는 건 아니다'는 게 금융당국 설명이지만 이날 초안을 보면 예외 허용요건은 상당히 까다로울 전망이다. '바늘구멍'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무엇보다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요건이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안을 보면 중복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상장 준비 단계부터 '상장의 필요성'에 대해 투자자와 일반주주를 설득해야 한다. 비상장 자회사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불가피하고, 미래 성장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주주와 소통도 해야 한다. 기업설명회와 주주간담회를 열어야 하고, 설문조사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주주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했는지를 공시 등을 통해 명확히 알려야 한다. 아울러 모회사 일반주주들에게 동의를 의무적으로 받는 절차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대표적인 사례로 셀트리온을 들었다. 셀트리온은 2024년 8월 자회사 셀트리온제약과 합병을 추진할 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주주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중 다수 의견에 대주주 지분을 합산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그 결과 70.4%가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돼 합병을 철회했다. 업계에서는 최종 가이드라인에도 이 같은 방식의 주주 동의 의무화 요건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 부작용도 살펴야
이날 세미나에서는 중복상장 규제의 필요성엔 동의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한국도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허용할 때에는 이사들이 주주 충실 의무에 기반해 어떤 이유로 중복상장이 전체 주주의 비례적 이익 관점에서 최선의 결정인지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며 “반드시 모회사 일반주주 과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규 중복상장 억제뿐 아니라 기존 중복상장 구조도 일정 부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NAV 할인율 의무 공시 △자회사 합병 등 자발적 중복상장 구조 해소시 세제 혜택 △의제배당 과세 전액 이연 혹은 합병 과정 면세 혜택 △자회사 상장 유지 부담금 도입 등을 제안했다.

다만 규제 속도와 범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이견도 적지 않았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 M&A 시장 위축과 벤처 생태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상장기업이 기술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키는 구조까지 막히면 혁신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예외와 유예를 통해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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