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구광모의 OLED 베팅—판을 바꾸는 투자란 무엇인가

기업의 선택은 언제나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 의미는 사람에게서 드러난다.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의 판단은 결국 리더의 몫이다. 최근 LG디스플레이가 OLED 인프라에 1조원이 넘는 추가 투자를 결정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분명히 구광모 LG회장이 있다. 이 투자는 단순한 설비 확장이 아니라, LG라는 기업이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선언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한때 정답은 LCD였다. 더 많이 만들고, 더 싸게 공급하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생산능력을 키웠고, 규모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 기업들이 더 큰 규모로 뛰어들면서 가격은 빠르게 무너졌고, 시장은 ‘속도와 물량’의 싸움으로 변했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비용 구조에서 불리한 기업은 버티기 어려웠다. 한국 기업들이 쌓아온 기술력도 가격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인도 비즈니스포럼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인도 비즈니스포럼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때 선택은 두 가지였다. 가격 경쟁에 끝까지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른 게임으로 이동할 것인가. 구광모 회장이 택한 길은 후자였다. LCD를 줄이고 OLED로 중심을 옮기는 전략은 단순한 사업 전환이 아니라 경쟁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번 1조원 투자는 그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결정이다.


OLED는 LCD와 다른 산업이다. LCD가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겨루는 시장이었다면, OLED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겨루는 시장이다. 공정이 복잡하고, 불량률이 높으며,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경쟁의 기준도 바뀐다. 가격이 아니라 기술, 공정 능력, 그리고 고객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물론 OLED 역시 시간이 지나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이미 시작됐다. 이 점에서 “결국 LCD와 같은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차이는 속도와 구조에 있다. LCD는 누구나 빠르게 따라올 수 있는 기술이었다. 반면 OLED는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돼야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같은 설비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같은 품질을 내기 어렵다.


특히 OLED 시장은 고객 구조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프리미엄 TV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한 번 공급망에 들어가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품질과 안정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격이 싸다고 해서 공급자가 바뀌지 않는다. 이른바 ‘락인 효과’가 작동한다. 이 점에서 OLED는 단순한 제품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 경쟁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구조에서 이번 투자의 의미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과거 재벌식 확장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외형만 보면 비슷하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과거의 투자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투자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조건을 유지하는 데 가깝다. 시장 점유율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기준을 지키기 위한 투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비와 기술의 관계다. 설비 투자가 곧바로 기술 격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비가 없으면 기술을 유지할 수 없다. OLED 산업에서는 생산 과정 자체가 학습이다. 많이 만들수록 공정이 안정되고, 불량률이 낮아지며, 품질이 개선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노하우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결국 설비 투자는 기술을 만들어내기보다, 기술이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OLED 시장 역시 경기 변동과 수요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줄어들면 투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쟁사들의 추격도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분명 위험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광모 회장이 이 길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은 언제나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 뒤처지는 위험과, 변화를 선택했다가 실패하는 위험이다. LG는 후자를 택했다. 가격 경쟁이라는 확실한 부담을 안고 가기보다는, 기술 경쟁이라는 불확실한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단순한 결단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왔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영역은 과감히 줄이고, 미래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다. 이는 과거 재벌식 확장과는 결이 다르다. 모든 분야에서 1등을 노리기보다는, 이길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접근이다.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사진연합뉴스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사진=연합뉴스]


이번 OLED 투자는 그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고객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생산 효율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가 모두 검증돼야 한다. 투자는 공격이지만, 구조는 방어가 돼야 한다. 이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전략은 완성된다.


결국 이 투자의 성패는 시간이 판단할 문제다. 지금 단계에서 성공을 단정할 수도, 실패를 예측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변화하지 않는 선택보다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을 택하는 순간, 기업은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다.


구광모 회장의 OLED 베팅은 바로 그 선택이다. 단순한 설비 확대가 아니라, 경쟁의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그리고 그 시도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한 기업의 성과를 넘어 한국 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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