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조현준의 베트남—공장은 국경을 넘고, 기업은 외교가 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한때 글로벌 기업들은 효율을 위해 한 곳에 모였다. 가장 싸고, 가장 빠르고, 가장 큰 곳을 찾았다. 그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미·중 갈등 이후 그 질서는 흔들렸다. 기업들은 하나의 질문 앞에 섰다. “어디에 의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


이른바 ‘차이나+1’ 전략이다. 생산 거점을 나누고, 리스크를 쪼개는 방식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 흐름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의 역설이 등장한다. 분산을 말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곳에 집중하는 현상이다. 이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조현준과 효성그룹의 베트남이다.


효성은 2007년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50억 달러를 투자하고 9개 법인을 구축했다. 1만 명을 고용하고, 스판덱스·타이어코드·폴리프로필렌·전동기까지 이어지는 생산 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에 최근 바이오 부탄다이올과 고압 전동기 등 첨단 산업 투자까지 더해지면서 누적 투자 규모는 60억 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분산이 아니라 ‘집중’이다.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이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간담회에서 베트남 기업인과 명함을 교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이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 간담회에서 베트남 기업인과 명함을 교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분산을 위해 시작된 전략이 왜 또 다른 집중으로 귀결되는가.


답은 단순하다. 분산의 대상과 집중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이 분산하려는 것은 ‘국가 리스크’다. 특정 국가, 특히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것이다. 반면 집중하는 것은 ‘기능’이다. 생산, 물류, 인력, 기술이 결합된 하나의 클러스터를 만드는 데는 오히려 집중이 필요하다.


즉 오늘의 공급망은 이렇게 작동한다.
글로벌은 분산하고, 지역은 집중한다.


효성의 베트남은 바로 이 구조 위에 서 있다. 중국이라는 단일 축에서 벗어나면서, 베트남이라는 거점을 중심으로 생산 기능을 집약했다. 단순히 공장을 옮긴 것이 아니라, 공급망의 한 축을 새로 만든 것이다. 이 점에서 효성의 전략은 ‘이전’이 아니라 ‘재설계’에 가깝다.


이 재설계는 산업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과거 베트남은 저임금 생산기지로 인식됐다. 그러나 효성의 사업 구조를 보면 단순 노동집약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스판덱스는 고도의 공정 안정성이 필요한 제품이고, 타이어코드는 글로벌 완성차 공급망과 직결된다. 여기에 폴리프로필렌과 PDH 같은 화학 산업, 그리고 전동기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생산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첨단 산업으로 갈수록 연구개발과 기술 인프라가 중요한데, 왜 그 무대가 여전히 베트남인가.


이 역시 기능의 분리로 설명할 수 있다. 첨단 산업이라고 해서 모든 과정이 같은 곳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은 한국이나 선진국에서 이뤄지고, 생산은 효율적인 거점에서 수행된다. 베트남은 이 중 ‘생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 축적된 노동력, 안정된 정책 환경, 그리고 다양한 자유무역협정이 결합되면서 수출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기술은 이동할 수 있지만, 구조는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효성이 베트남에서 만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작동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이 거점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기업의 역할은 경제를 넘어선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에서 조현준 회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외교는 정부가 주도했다. 협정은 국가가 맺고, 기업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순서가 바뀌었다. 기업이 먼저 들어가 관계를 만들고, 정부가 그 위에 협력 구조를 얹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곧 외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기업이 만든 네트워크는 외교의 중요한 지렛대가 된다. 현지 정부와의 신뢰, 산업 인프라, 고용과 투자로 연결된 관계는 국가 간 협력을 구체화하는 기반이 된다. 외교가 말이라면, 기업은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장치다.

베트남 동나이에 위치한 효성 비나기전 공장사진효성중공업
베트남 동나이에 위치한 효성 비나기전 공장[사진=효성중공업]


효성의 베트남은 바로 이 지렛대를 보여준다. 이미 구축된 생산 기반과 네트워크는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실질적 연결 고리가 된다. 이는 일회성 방문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관계다. 장기 투자와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론 이 구조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집중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정치적 변화, 노동 환경, 글로벌 수요 변동 등은 모두 변수다. 특히 누적 6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와 핵심 생산 거점이 한 국가에 모여 있다는 점은 분명 부담이다.


그러나 이 리스크를 단순히 ‘감수’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늘의 글로벌 기업들은 집중과 동시에 대비 전략을 함께 가져간다. 생산 공정의 일부를 다른 국가로 분산하거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핵심 기술과 의사결정 기능을 본국에 유지하는 방식이다. 완전한 분산도, 완전한 집중도 아닌 유연한 구조다.


효성 역시 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해답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공급망 경쟁력은 위치가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결국 조현준의 베트남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기업은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그리고 그 뿌리를 통해 어떤 구조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의 글로벌 경쟁은 더 이상 공장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배치하며, 어떻게 위험을 나누는가가 핵심이다.


효성의 선택은 그 해답 중 하나다. 분산의 시대에, 전략적 집중으로 대응하는 방식. 공장은 국경을 넘었고, 공급망은 하나의 전략이 됐다. 그리고 그 전략 위에서 기업은 이제 경제를 넘어 국가의 힘을 설명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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