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아닌 성당서 울린 '엘레지'

  • 남아공 국가관서 쫓겨나 '엘레지' 인근 성당서 개막

  • 흐느낌이자 통곡, 노래…폭력으로 희생된 여성 애도

  • 예술·정치 충돌…국가체계 밖에서도 '계속'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5일(현지시간) 찾은 7세기 성당 키에사 디 산타 안토닌(Chiesa di Sant’Antonin)에서는 여성들의 흐느낌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작가 가브리엘 골리아스(Gabrielle Goliath)의 '엘레지'(Elegy)는 8개의 대형 영상설치물에서  7명의 여성 퍼포머가 약 1시간 동안 길고 애절한 음을 유지한다. 이 음은 흐느낌이자 통곡이며, 노래와도 같다. 마치 메들리처럼 한 사람의 음을, 뒤에 있는 다른 이가 이어받는다. 애도의 소리가 끊임없이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마지막 스크린에는 '부재'를 드러내듯 빛으로만 밝혀진 단상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엘레지’가 전시된 이 성당은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국제전)가 열리는 아르세날레와는 채 도보 5분 거리다. 당초 '엘레지'는 인근 자르디니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관에서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어린아들과 숨진 32세 팔레스타인 시인 히바 아부나다를 추모하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아공 정부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올해 1월 국가관 참여를 전면 취소했다. 이에 작가는 외부 지원을 받아 간헐적으로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는 이 성당에서 '엘레지'를 독립 전시 형태로 선보이게 됐다.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애도하는 의식인 '엘레지'는 2014년 남아공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살해된 10대 여학생 이펠렝 크리스틴 모홀라네를 추모하면서 시작했다. 골리아스는 이펠렝을 기리기 위해 '엘레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그 아이는 나의 첫 자식이자 자부심이었고, 내 삶의 가장 큰 힘이었다. 그녀와 함께 내 일부도 죽었다'는 내용의 이펠링의 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었다. 

이후 그는 10여년간 엘레지 퍼포먼스를 통해 성적·인종적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호출하고 애도했다. 20세기 초 독일 식민군이 자행한 헤레로·나마 집단학살로 강제 이주되고 살해된 두 나마족 여성 그리고 강제 이주와 집단학살된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동, 민간인 등이 그 대상이다. 

이날 전시장 인근에서 만난 가브리엘 골리아스는 지난 4일 열린 프리뷰와 공식 인터뷰 외에는 남아공 정부의 결정이나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엘레지 [사진=윤주혜 기자]

예술과 정치가 충돌하는 논란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전반의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차례 연속 비엔날레에 불참했던 러시아와 가자지구 사태로 집단학살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이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 여파로 심사위원 전원이 집단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황금사장상 수상작은 오는 11월에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참여를 문제 삼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지원하던 약 200만 유로의 자금을 철회하기로 하면서 러시아관은 프리뷰 기간에만 일반 공개된다. 9일 공식 개막 이후에는 전시관 문을 닫기로 했다. 이 밖에도 호주, 미국 등 주요 국가관에서도 정치적 논란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엘레지'처럼 예술은 계속된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은 벨라루스 출신 망명 예술가들로 구성된 벨라루스 프리 시어터(Belarus Free Theatre, BFT)는 전시 '오피셜, 언오피셜, 벨라루스'(Official. Unofficial. Belarus)를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선보인다. 문화는 국가 체계 밖으로 밀려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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