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북한 '두 국가 헌법'의 함의와 한국의 선택

북한이 헌법을 바꿨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라 체제의 방향을 재정의하는 사건이다. 정부와 학계가 공개한 북한 헌법 개정 내용에 따르면, 기존 헌법에 있던 ‘조국통일’ 관련 표현이 삭제되고, 국가 영토를 북측 영역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동시에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시하고, 핵무력 지휘권을 헌법에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남북 관계를 어떤 틀로 재설정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번 개정이 곧바로 ‘두 국가 선언’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지는 보다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일 조항의 삭제는 기존의 통일 지향적 국가 정체성에서 이탈했다는 점에서는 분명하다. 그러나 삭제 자체가 곧 ‘두 국가 체제’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헌법 조문이 직접적으로 남북을 별도의 주권 국가로 규정했는지, 아니면 통일 개념을 단순히 후퇴시킨 것인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은 ‘통일 포기’라기보다 ‘통일 개념의 제도적 후퇴’로 보는 것이 보다 정교한 접근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사진연합뉴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북한은 더 이상 헌법 차원에서 통일을 국가의 핵심 목표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남북 관계의 기본 전제를 바꾸는 조치다. 앞으로의 남북 관계는 ‘민족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관계’의 성격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변화는 협력과 갈등의 양상을 모두 바꿀 수 있다.


영토 조항의 신설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은 자국의 영역을 명문화하면서 국가성을 강조했다. 다만 해상 경계선,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긴장 완화 의도로 해석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제정치에서 경계선의 의도적 모호성은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하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 장치이고, 다른 하나는 향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주장할 수 있는 전략적 여지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긴장 관리와 공세적 유연성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내포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핵무력 관련 조항의 변화는 더욱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핵 사용 권한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북한이 핵을 단순한 군사 수단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핵심 요소로 격상시켰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것이 곧 핵이 협상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됐다는 의미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사안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협상 대상이 된 사례는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행태와 정책 방향을 고려할 때, 핵은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핵은 더 이상 교환 가능한 카드가 아니라 협상의 판을 규정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함께 국무위원장의 권한 강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가수반 명시와 핵 지휘권 집중은 권력 구조의 단순화와 개인 권력의 강화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낳는다. 이는 외부적으로는 안정된 통치 체제를 강조하는 신호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권력 집중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장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한이 ‘정상국가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역시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핵무력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상국가’의 기준과 충돌한다. 따라서 북한이 추구하는 것은 국제 규범상의 정상성이 아니라, 내부 통치와 외교적 메시지를 결합한 ‘자기 정의형 정상성’에 가깝다. 외부에는 안정된 국가처럼 보이려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핵을 중심으로 한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이다.


이제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이번 변화는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대응을 요구한다.


첫째, 정책 전제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북한이 통일 담론을 후퇴시킨 상황에서 한국 역시 정책 차원에서는 현실적 공존을 전제로 한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 다만 통일이라는 장기 목표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목표와 수단을 구분하는 것이다. 통일은 장기적 비전으로 유지하되, 단기 정책은 갈등 관리와 안정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군사적 억제력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헌법에 명시한 이상, 억제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확장 억제 체계를 강화하고, 한국 자체의 대응 능력도 고도화해야 한다. 다만 억제력 강화가 곧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셋째, 충돌 관리 장치는 억제력과 별도의 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억제와 소통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리된 채 동시에 운영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군사적 억제는 유지하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핫라인과 실무 채널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두 정책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넷째, 외교적 공간을 넓혀야 한다. 북한이 ‘국익수호’를 대외 정책 원칙으로 명시한 만큼,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활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 역시 미국 중심 외교에 더해 다층적 외교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레버리지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책 우선순위의 명확화가 필요하다. 모든 대응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위기 상황에서는 억제가 우선이고, 긴장이 완화된 국면에서는 소통이 우선이다. 상황에 따른 선택 기준을 명확히 해야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가 유지된다.


이번 북한 헌법 개정은 한반도 질서의 변화를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비교적 명확해졌다. 통일 담론은 후퇴했고, 핵은 제도화됐으며, 국가 정체성은 재정의됐다. 동시에 그 변화가 가져올 파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해석이 아니라 대응이다. 한국은 더 이상 과거의 전제에 머물 수 없다.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되, 그 현실에 끌려가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냉정한 인식과 정교한 선택만이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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