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보다 안 아픈 게 효도"…어버이날 농촌 경로잔치에 번진 노인들의 한숨

  • 친구는 떠나고 자식은 도시로…화천 농촌마을 어르신들의 외로운 어버이날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강원 화천군 마을 곳곳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렸다사진박종석 기자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강원 화천군 마을 곳곳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렸다.[사진=박종석 기자]

“카네이션은 달아서 뭐해. 안 아픈 게 제일 큰 효도지…”
 
어버이날인 8일, 강원 화천군의 한 농촌마을 경로당.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의 말끝은 오래 떨렸다. 웃음이 오가는 자리였지만, 경로잔치 곳곳에는 외로움과 병마를 견디는 노년의 삶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날 마을 경로당과 회관에서는 부녀회와 청장년회가 마련한 어버이날 경로잔치가 오전부터 이어졌다. 정성껏 차린 음식이 상에 올랐고, 주민들은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큰절을 올렸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꺼낸 이야기는 건강과 병원 이야기였다.
“00는 왜 안 왔어?”
“병원 갔어. 몸이 안 좋아서 못 온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 죽겠어”
“춘천에 잘 본다는 병원 있다더라. 병 키우지 말고 얼른 가봐”
짧은 대화 속에는 평생 농사와 노동으로 버텨온 세월의 무게가 묻어났다.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한 노인들이 많았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힘겹게 걷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운동 이야기가 나오자 한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운동은 무슨 운동, 몸이 아파 집에만 있지”
 
경로당 안은 웃음보다 한숨이 더 많았다. 노인들의 입에서는 자주 부고 소식이 오갔다.
“친구들이 하나둘 먼저 가네…”
“부고 들릴 때마다 이제 다음은 내 차례인가 싶어”
 
순간순간 분위기가 밝아지는 때도 있었다. 자식 이야기와 손주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우리 아들은 도시에서 잘살고 있어”
“손주가 이번에 학교 들어갔어”
그 순간만큼은 굽은 어깨 위로 잠시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화도 며칠에 한 번 올까 말까지”
“이런 날 끝나고 집에 가면 더 허전해”
 
화천지역 농촌마을은 이미 초고령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화천군 인구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 군 전체 인구는 2만2335명이다. 행정상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이미 초고령사회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농촌마을 현장에서는 체감 고령화가 훨씬 심각하다. 일부 마을은 주민 절반 이상이 고령층이다. 젊은 층 도시 유출과 군부대 감소까지 겹치면서 마을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날 행사 지원에 나선 마을 청년회 봉사자 상당수도 70대였다. 한 노인은 음식을 나르는 봉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70대면 아직 젊은이지”
“젊은이들이 고생하네. 이렇게 챙겨줘서 고맙다”
 
화천 농촌마을에서는 노인회와 청년회 구성원이 겹치는 현실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만큼 마을의 고령화는 깊어졌다.
 
주민들은 “젊을 때는 자식 키우느라 평생 고생했는데 늙고 나니 몸 아픈 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가 끝날 무렵, 한 어르신은 카네이션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비싼 선물 필요 없어”
“자식 얼굴 한번 보고, 안 아프게 사는 게 최고야”
 
어버이날 경로잔치가 끝난 뒤 마을회관은 다시 조용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들의 굽은 뒷모습 사이로, 늙어가는 농촌마을의 현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주민들은 “노인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마을의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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