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세계 패권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18세기 이후 서유럽이 지배한 세계 질서, 이제 한·중·일의 극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 -미·중 패권경쟁과 한·일 연합의 부상…쇠락하는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새로 쓰이는 동아시아의 역사

세계는 지금 거대한 문명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미·중 기술 패권 전쟁,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을 뒤흔드는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위기까지 겹치면서 국제질서는 다시 한 번 격렬한 재편의 시대를 맞고 있다.
 
21세기 중반으로 향하는 오늘의 세계는 더 이상 냉전 시대의 미국 단독 질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다극체제도 아니다. 절대적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가진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제조업과 AI, 공급망과 인구를 앞세운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반면 한때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유럽연합(EU)은 저출산과 고령화, 에너지 위기와 산업경쟁력 약화 속에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사적·경제적 피로가 누적되며 사실상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이 있다. 바로 한·중·일이 위치한 동북아시아, 즉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이다.
 
18세기 이후 세계 패권의 중심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서단에서 시작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동했다. 산업혁명과 금융혁명, 해양 패권과 군사력은 오랫동안 서구 문명이 독점해 왔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제조업과 반도체, AI와 배터리, 조선과 첨단 공급망은 점점 극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의 부와 기술, 문화와 인재의 흐름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다시 동아시아의 산업 벨트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오랜 역사적 갈등을 넘어 전략적 협력 관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어제 경북 안동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양국 정상은 중동 위기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고, LNG와 원유 협력, 공급망 파트너십 확대,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협력까지 논의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사실상 준(準)경제동맹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양국 간 셔틀외교가 완전히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서울과 도쿄를 넘어 부산·나라·경주·안동 같은 지방 도시들까지 외교 무대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일 관계가 과거의 냉랭한 외교를 넘어 인간적 신뢰와 생활 외교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한·일 관계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수출규제 문제로 극단적 대립을 반복했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두 나라를 다시 현실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 핵 위기, 미국의 전략 변화, 중동 에너지 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결국 서로 협력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일본은 소재·부품·정밀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고,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조선·디지털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기초기술과 한국의 실행력, 일본의 장인정신과 한국의 속도, 일본의 산업축적과 한국의 혁신 역동성이 결합한다면 동아시아는 세계 제조업과 AI 산업의 가장 강력한 축이 될 수 있다.
 
AI 시대의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단일 국가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반도체 하나만 보더라도 설계와 장비, 소재와 제조, 패키징과 데이터센터, 전력과 냉각기술이 모두 연결돼 있다. 한국과 일본은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고 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언급했던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은 이제 단순한 기업인의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현실적 전략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공동체는 무역 확대만 뜻하지 않는다. 문화·관광·스포츠·청소년 교류·AI 협력·반도체 공급망·에너지 안보·금융 협력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형 공동체의 가능성을 뜻한다.
 
앞으로 한·일 협력은 산업과 기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금융시장 안정, 통화협력, 해상수송로 보호, 에너지 공동비축, 원자재 공동구매, 관광 인프라 연결, 스포츠 리그 교류, 청소년 캠프와 대학 공동연구, 영화·음악·게임·애니메이션 공동 제작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경제는 제도이고, 문화는 감정이며, 스포츠와 관광은 국민의 마음을 여는 통로다. 진정한 공동체는 이 세 영역이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하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한·일 밀착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일 협력을 강하게 원한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삼각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한·일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상황을 내심 경계할 수도 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독자적 경제·기술 블록으로 성장할 경우,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와 반도체, 배터리, 조선,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한·일 연합은 미국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제조업 기반 상당 부분은 약화됐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의 정밀성과 산업 생태계의 깊이를 여전히 갖고 있다. 미국은 한·일 협력을 동맹 강화의 자산으로 보면서도, 그것이 독자적 동아시아 블록으로 발전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관리하려 할 것이다.
 
중국 역시 한·일 관계 개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중·일 협력을 통한 동아시아 경제권 형성을 원한다. 세 나라가 함께 가면 세계 최대 수준의 제조업·무역·기술·소비 시장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체제는 한국과 일본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는 협력의 가능성과 긴장의 원인을 동시에 만든다.
 
중국은 한·일 협력이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망으로 굳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AI·반도체·해양안보·에너지 분야에서 긴밀히 결합할 경우, 중국 입장에서는 동중국해와 대만해협, 남중국해 문제에서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은 한·일 협력을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한·중·일 3국 협력의 틀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더욱 복잡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급격히 소모시켰다. 과거 소련 시절처럼 극동 개발에 집중할 여력도 거의 없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극동 시베리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 속에서 방치된 측면이 크다.
 
미래 어느 시점에 한국과 일본이 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극동 개발에 본격 참여하게 된다면, 러시아는 이를 무조건 막기보다 선택적으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군사적 충돌이나 영토적 긴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길은 침략이 아니라 협력과 개발, 평화적 투자와 인프라 연결이어야 한다. 극동 시베리아는 전쟁의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물류·농업·기후산업의 새로운 협력 공간이 될 수 있다.
 
유럽 역시 동아시아의 부상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이끌던 제조업 중심 유럽 경제는 에너지 위기와 산업 공동화, 고령화 속에서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제한된 자원과 인구 감소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AI·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문화산업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은 규범과 제도의 힘을 갖고 있지만, 생산과 속도의 힘은 약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생산과 속도의 힘을 갖고 있지만, 더 큰 문명적 비전과 공동시장 전략은 아직 부족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일 협력의 미래가 중요해진다.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유럽식 제도와 미국식 혁신, 아시아식 제조 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의 측면에서도 한·일 협력은 세계적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의 K팝,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 문화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문학, 디자인, 장인문화가 결합하면 세계 청년 세대에게 가장 강력한 문화 블록이 될 수 있다. 문화는 더 이상 부차적 산업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브랜드이고, 관광이고, 소비이며, 외교이고, 세계인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한·일 청소년 축구 교류, 야구 교류, e스포츠 리그, 대학 스포츠 교류는 미래세대의 감정을 바꾸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 외교관이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청소년 선수 한 명의 악수와 공동훈련이 해낼 수도 있다. 젊은 세대가 서로를 경쟁자이면서 친구로 받아들일 때, 역사는 비로소 앞으로 움직인다.
 
물론 한·일 관계 앞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많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독도 문제 등 역사적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양국 내부에도 반일과 혐한 감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문제를 가볍게 보거나 덮어서는 안 된다. 상처는 인정되어야 하고, 기억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를 잊지 않되 과거에 갇히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이제 ‘역지사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상대의 역사적 상처를 이해하면서도, 미래세대가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중국 고전의 표현처럼 ‘구동존이(求同存異)’, 즉 같은 점은 함께 추구하고 다른 점은 인정하며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앞으로 한·일 협력은 단순한 정상외교를 넘어 생활 속 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업은 공급망과 기술을 연결하고, 대학은 청년과 지식을 연결하며, 지방정부는 관광과 문화를 연결해야 한다.
 
언론은 갈등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협력의 구조와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들이 서로를 적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갈 파트너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는 길을 열 수 있지만, 그 길을 실제로 걷는 것은 국민이다. 정치가 문을 열고, 경제가 길을 닦고, 문화가 마음을 잇고, 청년이 미래를 완성해야 한다.
 
세계 패권의 중심축은 지금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대서양 시대가 저물고, 태평양과 동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안동에서 열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향한 조용하지만 거대한 방향 전환의 신호탄일 수 있다.
 
역사는 때때로 전쟁이 아니라 협력에 의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 그리고 지금 극동에서 시작되는 한·일 협력은, 어쩌면 21세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이 뭉치면 세계 평화와 번영의 기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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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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