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담] 62개 호텔 버린 거대 자본…쿠바 붕괴가 K관광에 묻는 '생존 체력'

쿠바 시내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쿠바 시내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던 쿠바가 하루아침에 자본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거리에 흐르던 살사 음악은 끊겼고, 62개에 달하는 럭셔리 호텔과 리조트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쿠바 관광 산업을 지탱하던 캐나다 호텔그룹 '블루 다이아몬드 리조트'가 전면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철수 이유는 복합적이다. 미국의 고강도 봉쇄 조치, 항공 연료 부족과 전력난, 주요 노선 축소가 한꺼번에 덮쳤다. 사측 역시 '지속적인 운영상 제약'을 토로했다. 외부 충격 하나에 국가 핵심 산업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통계는 더 냉혹하다. 올 1~4월 쿠바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2만8608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8% 급감했다. 4월 한 달만 놓고 보면 3만551명에 불과하다. 방문객의 40%를 차지하던 최대 송출국 캐나다 관광객이 63.8%나 빠져나갔다. '큰손'이 사라지자 호텔과 항공, 여행, 지역 상권으로 이어지던 생태계 전체가 질식했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참사로 치부하기엔 개운치 않은 상황이다. 관광은 대외 환경에 가장 취약한 산업이다. 우리는 코로나19 당시 생태계 셧다운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사드(THAAD) 갈등, 한일 관계 경색 등 외풍이 일 때마다 관광업계는 1순위로 타격을 입었다. 명동과 홍대, 성수동에 다시 외국어가 들리는 지금의 훈풍이 마냥 반가우면서도, 이 회복세가 얼마나 얇은 얼음판 위에 서 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방한 관광객 3000만명 조기 달성'을 내걸고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가 산업의 체력을 대신하진 않는다. 관광객이 늘었다는 통계만으로는 위기에 강한 구조를 만들 수 없다. 몇 명이 왔느냐를 넘어, 어느 국가에서 와서 얼마나 지갑을 열고, 지역 경제에 어떤 낙수효과를 남기느냐가 핵심이다.

한반도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를 늘 안고 산다. 안보 위기나 외교 마찰이 불거져 외항사가 노선을 줄이고 거대 자본이 투자금을 거둬들이면 회복세는 순식간에 꺾인다. 글로벌 체인 호텔과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외부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때 국내 생태계가 버텨낼 재간이 있는지 점검할 때다. 관광은 겉보기에 화려한 소비 산업이지만, 실상은 숙박·교통·지역 상권이 촘촘히 맞물린 복합 생태계다. 한 축이 삐끗하면 파장은 곧바로 현장을 덮친다.

지금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단단한 기초체력이다. 특정 국가에 쏠린 방한 수요를 분산하고, 내수 관광을 든든한 방어막으로 키워내야 한다. 지역 관광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체류와 소비가 순환하는 구조로 짜야 한다. 휠체어를 탄 교통 약자도 불편 없이 이동하는 보편적 인프라, 위기 시 작동하는 안전 대응 체계, 중소업계가 함께 버티는 자생력이 절실하다.

쿠바의 현실은 언제든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울이다. 관광은 순풍이 불 때 덩치를 키우지만, 진짜 실력은 위기 때 판가름 난다. 3000만명이라는 숫자에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거센 외풍에도 끄떡없는 산업의 뿌리부터 다져야 한다. 화려한 홍보 문구보다 내실과 체질 개선이 먼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