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화려한 블루칩, 침묵의 레드칩, 미술시장은 구조조정 중 

  • 호황이란 착시현상?

  • 미술시장의 자구 실험

  • 26년 5월 메이저

  • 각자도생에서 연대로, 미술 시장의 구조조정

경매사 아드리앙 마이어 잭슨 폴록의 작품 넘버 7A 1948을 1억 5700만 달러에 낙찰  사진크리스티
경매사 아드리앙 마이어, 잭슨 폴록의 작품 넘버 7A, 1948을 1억 5700만 달러에 낙찰 [사진=크리스티]
 
호황이란 착시현상?
최근 뉴욕과 런던의 경매장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초고가 낙찰 소식은 미술시장이 마치 전면적 호황을 맞은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킬 만큼 경매회사와 미술시장에 근간을 둔 미술 전문지가 연일 호들갑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거장의 작품을 앞세워 수십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은 화려하다. 그러나 이 활황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미술시장 전체의 회복이라기보다 초고가 블루칩 작품에 집중된 국지적 반등에 불과하다.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이 1억 8000만 달러(약 2749억 원)를 넘어서고,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와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같은 20세기 거장의 작품은 역시 기록을 새로 쓰며 시장을 주도한다. 피카소, 몬드리안, 바스키아 등 거장들의 이름은 여전히 경매장의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다. 이런 현상은 대기업 오너 가문의 젊은 리더십 전환과 자산가들의 부의 대물림이라는 세대교체 과정에서 고령의 자산가들의 컬렉션이 시장에 나오면서 기록적인 낙찰가를 경신하는 이유다.

이는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검증된 이름과 대표작에 자금이 몰리는 전형적 현상이다. 미국 시장은 이러한 흐름을 타고 25% 이상 성장하며 반등을 주도했지만,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다. 경매사 간 격차도 뚜렷하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대형 양대 경매회사는 매출을 크게 늘었지만, 필립스는 감소세를 기록하며 상위 경매사와 중소 경매사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사라진 뒤, 다음 세대가 워홀이나 로스코의 작품을 과연 같은 열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블루칩의 가격 상승이 세대교체 이후에도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응해 일부 갤러리는 새로운 경매 플랫폼을 도입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즉 무리하게 지점을 늘리다 파산하는 구조적 위기를 벗어나고자 '판매 방식의 기술적 혁신'을 택한 것이다.

즉 깊은 침체에 빠져 있는 미술시장은 자산가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화랑과 컬렉터 간의 1:1 거래(Private Sale)은 가격을 두고 지루하게 협상은 늘어지고, 작품 구매에 대한 긴박감은 사라졌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컬렉터들은 간 만 보며 방치하는 현상이 심화하는 시장의 활력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화랑들이 직접 타임라인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이끌어 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자구책일 수도 있다.
 
미술시장의 자구 실험
최근 노련한 미술품 거래상이자 미술시장 전문가인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évy, 1967~), 브렛 고르비(Brett Gorvy, 1964~), 아말리아 다얀(Amalia Dayan, 1972~)은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1:1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을 주시했다. 2025년 1:1거래 즉 프라이빗 세일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크리스티는 총매출의 약 24%인 15억 달러, 소더비는 총매출의 17%인 약 12억 달러였다. 필립스의 경우 프라이빗 세일은 무려 66% 급증하여 약 2억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이렇게 굴지의 경매회사의 매출 중 프라이빗 세일은 경매업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파고 든 것이다.

현재 레비 고르비 다얀(Lévy Gorvy Dayan)이라는 이름으로 협업하고 있는 이들 노련한 경매전문가들은 ‘LGD 해머(LGD Hammer)’라는 맞춤형 라이브 경매 플랫폼을 출시하며 개인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들이 고안해 선보인 새로운 경매 플랫폼인 'LGD 해머' 플랫폼은 바로 작품 거래의 시간 끌기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기존의 경매와 프라이빗 세일을 절묘하게 결합해, 단 한 점의 마스터 피스나 핵심 컬렉션만을 지정된 날 경매에 올려 전 세계 최상위 컬렉터를 대상으로 실시간 전화와 온라인으로 라이브 경쟁(Bidding)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수백 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형 경매사의 이브닝 세일과 달리, 집중과 긴박감을 극대화한다.
 
윌렘 드 쿠닝 우유를 따르는 여인1984사진레비 고르비 다얀
윌렘 드 쿠닝, 우유를 따르는 여인(1984).[사진=레비 고르비 다얀]

경매 대상 작품은 먼저 갤러리에서 예약제를 통해 깊이 있게 작품을 보고, 충분히 연구와 감상을 한 뒤, 마지막 순간에 경매라는 경쟁 장치를 통해 가격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미술관급 경험과 시장의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무엇보다 LGD 해머의 차별점은 창립자들의 경매 경력에서 나온다. 크리스티 등 글로벌 경매회사에서 수십 년간 일하면서 경매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세 사람은 대형 경매회사의 시스템을 갤러리 안으로 내재화해, 프라이빗 세일의 친밀함과 경매의 경쟁성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변주가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적 시도다.

결국 LGD 해머는 미술시장에 다시 긴박감을 불어넣으려는 실험으로 작품은 더 이상 방치되지 않고, 컬렉터는 결정을 미루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시장의 침체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이 플랫폼은 미술 거래의 본질인 '희소성과 경쟁'을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긴장감이다. LGD 해머는 그 불씨를 되살리는 도전이다. 그리고 이런 도전에 처음 나왔던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우유짜는 여인> (Milkmaid,1984)는 LGD 해머의 첫 비공개 경매에서 1000만 달러(약 150억 원)라는 예상가 범위 내에서 낙찰되면서, 새로운 하이브리드 플랫폼의 효과를 입증했다.

그러나 중저가 시장과 신진 작가 부문은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적 열기를 이끌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경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주요 경매에서 40세 미만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필립스마저도 한두 점에 그쳤다. 과거 ‘레드칩’이라 불리며 시장을 흔들던 젊은 작가의 에너지가 사라진 것이다.
경매사 유게 왕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Kerze을 3513만 5000 달러에 낙찰시기는 모습 사진제공 Alan Padilla 사진크리스티
경매사 유게 왕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Kerze)을 3513만 5000 달러에 낙찰시기는 모습 사진제공 Alan Padilla, [사진=크리스티]

따라서 평균 낙찰가 상승은 초고가 작품 덕분일 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경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1차 시장인 화랑(Gallery)은 높은 임대료 등 운영비와 아트페어 과다한 참가비 때문에 부담은 커지는 한편 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 많은 컬렉터가 화랑에서 작품 구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화랑에서 수만 달러에 제안된 작품이 경매에서는 수천 달러에 낙찰되는 현실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화랑 즉 1차 시장의 거품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일부화랑처럼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성 높은 신작을 내놓는 경우, 여전히 수요가 몰리며 매진을 기록한다는 점은 시장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블룸 갤러리 (Blum Gallery), 비너스 오버 맨해튼 (Venus Over Manhattan), 클리어링 (Clearing) 같은 유수의 화랑들이 초고가 부동산 임대료, 수억 원이 드는 해외 아트페어 부스 비용과 함께 일상적 경비조차 은행 대출이나 외부 펀딩에 의존하면서, 금리가 오르자, 유동성 위기가 곧바로 파산으로 이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겉으로는 활황처럼 보이는 경매 성적표가 미술시장의 전면적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장은 블루 칩의 화려한 부활과 레드 칩의 침체라는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다. 진정한 회복은 초고가 작품에만 몰리는 자금 흐름을 넘어, 신진 작가와 중간 가격대 작품에도 신뢰와 수요가 확산되는 구조적 변화가 뒤따를 때 가능하다. 지금의 활황은 호황의 착시에 불과하며, 미술시장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균형 있는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이렇게 현재의 미술시장은 예술을 순수한 감상보다 ‘투자 자산’으로 취급하면서 과열된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전 세계 미술계의 뼈아픈 구조 조정기이다.

사실 최근 대형 화랑들의 잇따른 폐쇄는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파산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현재의 위기는 미술품을 순수한 감상 대상이 아닌 ‘금융 투자 자산(Asset Class)’으로만 접근해 무한 확장을 거듭하던 갤러리와 경매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결과다.
 
26년 5월 메이저
미술시장의 전례 없는 이상 현상 즉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구조적인 변화와 컬렉터 세대교체의 흐름은 외부 여건에 더욱 취약한 구조를 지닌 한국미술시장 특히 경매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사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5월 경매는 메이저 경매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위 시장을 견인할 만한 중요한 작품들의 출현이 제한적이었다. 해외 미술품 경매사들이 주요컬렉터의 소장품을 시장으로 끌어내 낙찰률보다 낙찰가를 , 매출을 키우려는 전략을 취하는데 반해 한국의 양대 경매사는 이런 여력이 아직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아무튼 5월 경매결과는 한국 미술시장이 조금씩 다시 움직이면서, 눈치를 보고있는 형세였다. 따라서 시장의 반응은 전면적인 회복보다는 여전히 작품군과 가격대, 작가별 인지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선별적인 반응을 보였다. K 옥션은 총 77점 중 60점이 낙찰되어 낙찰 총액 약 72억 3210만 원, 낙찰률 77.9%를 기록했다. K 옥션의 최고가는 야요이 쿠사마의〈Infinity Net (POWTY)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145.5cm)로, 추정가 21억~35억 원에 출품되었지만, 큰 경합 없이 낮은 추정가인 21억 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은 낙찰률 69.8%에 낙찰총액 약 56억 6000만 원을 기록했다. 서울옥션에 추정가 7억~12억 원에 나온 이우환의 〈Dialogue〉(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96.8cm)도 큰 경합 없이 6억 4000만 원에 시작해서 10억 4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우환 Dialogue 2018 acrylic on canvas 1303×968cm 사진서울옥션
이우환 Dialogue, 2018, acrylic on canvas, 130.3×96.8cm. [사진=서울옥션]


이상의 경매결과를 보면 블루칩 시장은 여전히 시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야요이 쿠사마나 이우환 같은 검증된 작가의 작품은 안정적으로 거래되었지만, 공격적 가격 상승은 제한적으로 나타나 나름대로 응찰자들이 보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시장이 현실적인 가격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비교적 가격이 낮은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강한 경합이 발생했다. 이들의 작품은 아직 시장에서도 검증이 끝나지 않았지만, 미술관이나 기타 비평가들의 ‘비평’이란 관문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응찰자들이 꽤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좀 더 들여다볼 부분이다.

무나씨(김대현, 1980~)의 작품은 중저가대에서 다수 응찰을 끌어내며 활기를 주도했고, 이목하(1996~)의 작품은 단기간에 고가 구간으로 진입하며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그러나 이러런 결과가 곧 건강한 시장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격 형성의 구조와 그 가격을 지지하는 조건을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옥션의 기대작이었던 대동여지도 채색 필사본은 유찰되었다. 이는 고미술 시장 전체의 약세라기보다 해당 작품의 가격과 구매자 조건이 맞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문화재급 작품은 학술적 가치가 크지만, 거래 성사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이번 경매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은 가격의 상승 여부가 아니라 가격의 설득력이다. 좋은 시장은 높은 가격을 많이 만드는 시장이 아니라, 그 가격이 왜 가능한지 설명할 수 있는 시장이다. 한국 미술시장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매 결과를 단순한 흥행 지표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가격을 지지하는 구조를 더 엄밀하게 읽고 살피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5월 경매를 단순한 활기 신호로 받아들이기보다, 시장의 신뢰도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블루칩의 안정성과 젊은 작가의 성장 가능성을 균형 있게 바라보되, 가격 형성의 구조적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야요이 쿠사마 Infinity-Net POWTY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1455cm 사진소더비
야요이 쿠사마 Infinity-Net (POWTY),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145.5cm [사진=소더비]
 
각자도생에서 연대로, 미술 시장의 구조조정
서구에서도 대형 화랑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에서도 몇몇 대형 화랑의 행보가 전과 같지 않다. 국제적인 메가 화랑이 지점을 늘려 하드웨어 확장에 몰두하던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환율, 그리고 초고가 작품 중심의 투기적 시장이 꺼지면서, 갤러리들은 고정비를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합병과 협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화랑 간의 자발적 인수합병(M&A)과 메가 플랫폼(Mega Platform)화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중소형 화랑들은 단독 운영의 한계를 느끼며 대형 화랑의 네트워크에 흡수되고, 자본력을 갖춘 메가 갤러리는 유망한 중견 갤러리를 인수해 작가 포트폴리오(Artists Portfolio)를 확장한다. 이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흐름이다. 또한 해외 진출 방식도 바뀌었다. 값비싼 단독 지점 대신 현지 갤러리와 공동 공간을 운영하며 비용과 리스크를 절반으로 나누는 ‘하이브리드 지점’이 나타났다. 베를린의 마이어 리거와 파리의 조슬린 울프가 서울 한남동에 공동 지점을 설립한 사례는 아시아 시장을 향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아트페어에서도 ‘부스 셰어링(Booth Sharing)’이 보편화되었고, 갤러리들이 비용을 나누고 작가를 교차 소개하는 실리적 협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무나시 인식 2022 한지에 먹과 아크릴 606×727cm 사진 K 옥션jpg
무나시, 인식 2022 한지에 먹과 아크릴, 60.6×72.7cm [사진=K 옥션]

이런 구조조정기의 한국 미술 시장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2022년 미술시장의 양적팽창을 위해 부풀렸던 거래액 1조 원의 기록이 허구이며 그나마 호황을 누렸던 시장이 글로벌 불황과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아 거품이 꺼지고 내실을 다지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맞고 있다.

최근 4년간 국내에서만 100여 개의 소형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는 미술계의 추산이 설득력이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체질 개선의 과정이다. 초고가 투기성 구매가 줄고, 1억~5억 원대의 중가 작품과 개념적 깊이를 가진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서구의 메가 화랑이 프리즈 서울에서 빠져나간 자리를 아시아 갤러리들이 대신하면서, 서울은 ‘서구 미술의 판매처’에서 ‘아시아 허브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보고, 대응해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흐름을 읽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할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잔치 끝에 떡 얻어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고작해야 이런 대책을 내놓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라 할 것인데, 미술시장을 문화 산업적 측면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예술정책관 산하의 회화, 공예, 조각, 사진, 디자인, 건축 등 시각예술진흥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시각예술디자인과가 시장이 아닌 ‘예술진흥’ 차원에서 담당하는 것은 문제다. 또 대부분 2~3년간의 순환보직 기간에 미술시장의 전모를 알 수 없는 일반직 공무원들이 내놓는 정책이 “돈 나눠주는 것” 외에의 것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부의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예술경영지원센터도 그 구조나 인적 구성이 척박해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전무한 단순한 미술 전공자에게 심사를 맡겨 이를 집행하는 것도 한국의 미술시장에 관한 적절한 정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원인이다.

사실 한국의 컬렉터들도 이제 ‘묻지마 투자’에서 벗어나 실속형 컬렉팅으로 돌아서며, 한국 작가와 미술사적 깊이를 가진 작품을 찾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 사실이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침체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향한 전환점이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끝났다. 연대와 협업을 통해 시장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한국 미술 시장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거쳐, 더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목하 Chromakey Blue 2022 면천에 유화 194x1303 cm 사진서울옥션
이목하, Chromakey Blue, 2022. 면천에 유화, 194x130.3 cm [사진=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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