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정체된 시장 깨운 '길티 소비'… 日 식품업계, 칼로리를 전면에 내세우다

  • 건강 강박의 역설… 건강 의식 높은 MZ세대가 '배덕 음식' 주 소비층

  • 죄책감을 숨기던 식품업체, 이제 콘셉트로 내세워 잇단 히트

챗GPT 생성 이미지출처후지경제 아사히신문
챗GPT 생성 이미지[자료 출처=후지경제, 아사히신문]



"작은 일탈 정도는 용서해야지. 스트레스를 녹이자. 욕망은 적이 아니다. 평생의 친구다."

일본 식음료업체 산토리 비버리지&푸드가 지난 3월 내놓은 탄산음료 '길티 탄산 NOPE(놉)'의 광고 문구다. 맛부터 거침없다. 과일과 향신료 등 99종 넘는 풍미에 단맛·신맛·쓴맛·감칠맛·짠맛을 모두 더했고, 당도는 13.3도로 일반 탄산음료(9~11도)를 훌쩍 웃돈다. 그런데도 발매 50일 만에 5500만 병이 출하돼 2019년 이후 산토리 탄산음료 가운데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기록했다. 건강 중시 트렌드에 밀려 내리막이던 시장에서다. 일본 조사업체 음료총연에 따르면 탄산음료 출하량은 2025년 기준 7년 전보다 약 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길티 탄산 NOPE'의 성과는 주목할 만 하다.

일본 식품시장에서 '길티(GUILTY·죄책감) 소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칼로리와 당분, 양을 따지지 않고 "죄책감이 들지만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소비를 가리킨다. 아사히신문이 시장조사업체 후지경제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길티푸드 시장은 2024년 4조 1000억 엔(약 389조원)으로 5년 전보다 24% 늘었다. 같은 기간 건강을 앞세운 헬스케어푸드 시장은 18% 증가한 2조 8000억 엔(약 266조원)에 그쳤다. 건강식이 주류인 사이 오히려 반대편 시장이 더 빠르게 컸다.

달라진 것은 식품업체의 화법이다. 과거 고칼로리·고당분을 감추던 업체들이 이제는 '배덕(背徳)' '금단' '돼지 등기름' 같은 단어를 상품명과 광고 전면에 내세운다. '몸에 좋다'가 아니라 '참기 어렵다' '빠져든다'고 말하는 쪽으로 전략을 틀었다. 그렇게 나온 상품들이 잇따라 히트했다. 지난해 2월 발매된 하우스식품의 레토르트 카레 '카레데니쿠루'는 1봉 160g에 소고기 50g(돼지고기 55g)을 넣어 자사 카레 중 고기 양을 가장 많이 담았는데, 광고도 없이 뒤 1년여 만에 100만 개를 넘겼다. 카레 개발자는 아사히에 "주인공은 카레가 아니라 고기다. 건강을 따지는 소비자는 겨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패밀리마트의 냉동 비빔면 '스타만 마제소바'는 마늘·진한 간장·돼지 등기름을 더한 535㎉ 제품으로, 올 5월 기준 냉동식품 매출 2위에 올랐다. 파스코가 가쿠슈인대 학생들과 공동 개발한 '길티 휩 멜론빵'(375㎉)은 3월 신상품 판매 2위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건 구매층이다. 주 소비층은 건강에 무관심한 이들이 아니라 건강 의식이 높다는 15~44세, 이른바 MZ세대다. 가쿠슈인대가 학생 50명에게 물었더니 70%가 자신을 건강을 의식하는 편이라고 답했지만, 80%는 "고칼로리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모순의 배경으로 아오키 유키히로 가쿠슈인대 명예교수는 디지털화와 스트레스 사회를 짚었다. 그는 아사히에 "디지털화로 건강 정보가 넘쳐 젊은층의 건강 의식은 높지만, 그 가치관만으로는 지쳐 숨 돌릴 곳이 필요하다"며 "'가끔은 괜찮지 않나'라는 변명이 길티 소비"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 취업에 쫓기고 소셜미디어(SNS)에서 비교당하는 젊은층에게 손쉬운 한 끼가 탈출구가 된다고 봤다. 이카리 도모코 메이세이대 준교수는 효율 중시 심리에 주목했다. 형편이 빠듯한 젊은층이 가격 대비 만족이나 시간 절약을 따지듯 스트레스 해소도 중시한다고 봤다. 이카리 준교수는 "길티 소비는 손쉽게 칼로리를 채우면서 스트레스 사회를 버티는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에서 죄책감은 더 이상 감춰야 할 단점이 아니라 상품의 콘셉트가 됐다. 건강식이 '참아야 하는 나'를 겨냥한다면, 배덕 음식은 '오늘만은 무너지고 싶은 나'를 노린다. 저성장과 건강 강박, SNS 피로가 겹친 시장에서 일본 식품업체들은 죄책감을 새로운 수요로 바꿔내고 있다. 이런 흐름은 가성비·시성비를 따지는 한국 MZ세대의 소비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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