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새 헌법이 7월 1일부터 발효됐다. 1995년 이래 카자흐스탄을 지탱해 온 기존 헌법을 대체하는 이번 조치는, 거의 4년에 걸쳐 진행된 개혁 작업의 결실이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실 성명을 통해 이날을 "진정으로 획기적인 순간"이라 부르며, 개혁과 발전, 현대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새 헌법은 지난 3월 15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됐다. 카자흐스탄 정부 발표에 따르면 투표율은 73퍼센트로 2019년 이후 가장 높았고, 찬성률은 87퍼센트에 달했다. 1991년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이 실시한 다섯 번째 국민투표이자, 2022년 이후로는 세 번째 헌법 개정 투표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민투표 이틀 뒤 새 헌법에 서명했으며, 헌법은 전문과 11개 장, 104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저 장
카자흐스탄의 첫 포스트소비에트 헌법은 1995년 건국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체제에서 만들어졌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양원제 의회를 골자로 한 이 헌법은 카자흐스탄이 석유와 가스, 광물 자원을 기반으로 30년 가까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동안 국가 운영의 틀이 됐다. 그러나 그만큼 권력은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2022년 초 발생한 소요 사태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 같은 권력 집중을 완화하고 정치적 경쟁의 공간을 넓히기 위한 첫 개헌을 추진한 바 있다. 이번에 발효된 새 헌법은 그보다 한층 더 나아가, 기존 조문의 상당 부분을 손질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권력 구조 자체다. 오랫동안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던 카자흐스탄 의회는 단원제 입법기구인 '쿠룰타이'로 통합된다. 쿠룰타이는 과거 초원 지대의 여러 민족이 모여 중대사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던 전통 회의체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와 함께 새 헌법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부통령직을 신설하고, '인민위원회'로 번역되는 '할륵 케네시'를 설치한다. 이는 각 민족문화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대표들을 국정 논의에 참여시키기 위한 자문기구다. 아스타나 정부는 이러한 변화가 그동안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던 입법 절차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더 빠르고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개혁을 제도 개편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도 연결지었다. 그는 매년 3월 15일로 지정된 '헌법의 날'을 봄맞이 전통 축제인 나우르즈나마 10년 계획의 시작과 결부시키며, 봄의 소생이라는 전통적 의미를 법치와 근면, 환경 보호 등 국가가 표방하는 가치들과 연결했다. 대통령실이 표현한 '공정한 카자흐스탄', 즉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와 발전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이며, 국민적 단합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나란히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대목,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대목에서 이번 개헌의 의미는 카자흐스탄 국경 너머로 확장된다. 제도적 권한의 소재가 명확하고 법적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무역 상대국과 해외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자본을 투입할지 판단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관계다.
수치만 놓고 봐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2025년 양국 교역액은 30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이 카자흐스탄에 투자한 금액은 총 80억 달러에 달한다. 제조업과 에너지, 기계공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지난 6월에는 제11차 카자흐스탄·한국 무역·경제·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가 아스타나에서 열려, 양측이 협상 중인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에 관해 논의했다. 카자흐스탄 국영통신사 카즈인포름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양측은 공동위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양국이 파트너십을 심화하고 공동 사업을 지속 추진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원자력 분야는 양국 협력이 가장 구체적으로 진전된 영역 중 하나다. 세계 최대 우라늄 매장량을 보유한 카자흐스탄은 한국 측과 소형모듈원자로, 즉 기존 원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지어지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의 도입을 놓고 협의를 진행해왔으며, 인력 양성과 양해각서 체결도 함께 추진 중이다. 산자르 자르케쇼프 카자흐스탄 에너지부 차관은 에너지 협력이 양국 관계의 근간이라고 밝혔으며, 한국 기업들은 2035년까지의 카자흐스탄 전력산업 발전계획에 따라 기존 발전소 현대화 사업에도 참여를 제안받았다.
핵심광물과 희토류, 즉 배터리와 전자제품, 청정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자원 역시 지난 6월 회의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으며, 양국 정부는 공동 가공 사업 추진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간회랑'으로도 불리는 트랜스카스피 국제운송로 역시 주요 의제였다. 이는 러시아 영토를 우회해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를 거쳐 유럽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철도·해상 물류망이다. 카자흐스탄이 이 회랑을 계속 확충해나가면서, 한국 산업계와 유럽 시장을 잇는 직접적인 통로로서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의 다른 어떤 나라도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위치다.
물론 이러한 협력이 개헌 자체에 직접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와 외교 파트너들은 제도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며, 새로 정비된 법적 기반과 명확해진 책임 구조, 법치에 대한 의지를 내세울 수 있는 정부는 협상 테이블에서 그만큼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된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서울 방문 초청을 수락한 상태이며, 올해 하반기 열릴 예정인 중앙아시아·한국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의는 이재명 대통령 정부와 함께 중앙아시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로, 카자흐스탄이 안정적이고 개혁적인 파트너로서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시점과 맞물린다.
가비둘라 오스판쿨로프 카자흐스탄 투자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 최대 경제국이자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물류 허브라고 소개했다. 카자흐스탄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과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이 자리에서 카자흐스탄 대표단과 직접 투자 기회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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