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247만장의 투표지가 던진 질문

잠실에 보관 중인 투표지 247만여 장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여야 일각에서 재검표 필요성이 거론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의혹이 제기됐을 때 국가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국민은 한 표를 행사하고, 그 결과를 신뢰하기 때문에 권력이 정당성을 얻는다. 따라서 선거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선거 과정에 대한 신뢰다.

의혹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다음 문제다.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인간이 만드는 제도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감시와 검증, 그리고 확인 절차를 제도화해 놓았다. 재검표 역시 그런 장치 가운데 하나다.

재검표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의혹을 정치적 주장으로만 남겨 두는 것이 더 큰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결과가 기존 개표와 동일하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결론이다. 선거의 공정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선관위 역시 국민 앞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미비점이 발견된다면 그 또한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바로잡는 과정이 된다.

물론 재검표가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수단이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이벤트라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혹 제기 자체를 금기시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질문을 허용하는 제도이지 질문을 봉쇄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절차다.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방식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권도 결과를 미리 정해 놓고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반대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절차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힘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투명함에서 나온다. 의혹을 덮는 것이 신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신뢰를 만든다. 선거의 권위는 질문을 막는 데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에도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올림픽공원 개표소에 쌓여 있는 투표용지 보관상자 서울연합뉴스
올림픽공원 개표소에 쌓여 있는 투표용지 보관상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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