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특정 국가나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인공지능(AI)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위해 ‘AI 주권’ 확보에 나섰다. 미국 정부의 방침 변경으로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의 고성능 AI 이용 계획에 불과 열흘 만에 제동이 걸리면서 핵심 AI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는 위험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AI 관련 정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업자에 대한 벌칙 도입 가능성도 열어뒀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4일 AI 정책의 국가 지침인 ‘AI 기본계획’ 개정안을 각의(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지난해 12월 처음 계획을 마련한 지 반년여 만의 첫 개정이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이버 공격과 안보상의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해, 기존의 활용 촉진과 규칙 정비 중심이던 정책에 안전 확보와 방어 역량 강화를 추가했다.
일본이 이번 계획에서 새롭게 전면에 내세운 개념은 ‘AI 주권’이다. 특정 국가나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AI를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일본이 강점을 지닌 분야의 기술력을 키워 자율성과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 측과 협의해 지난달 2일 정부기관과 메가뱅크 등이 미토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약 열흘 뒤 미국 정부가 수출관리상의 이유로 외국인의 이용을 다시 제한했다. 미국 측의 결정에 따라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이 필요한 AI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마쓰오 유타카 도쿄대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AI의 중요성이 국가 간 협상과 국방에 관계되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태”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은 모든 AI 기술의 국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민당은 지난 5월 제언에서 미국 기업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범용 고성능 AI와 AI 반도체까지 일률적으로 국산화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전략적이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해외 기술을 계속 활용하되, 특정 국가나 기업의 결정으로 이용이 제한될 경우에 대비해 대체 기술과 수단을 확보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일본, 버티컬 AI 및 피지컬 AI에 '승부수'
일본 정부는 특정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AI’와 로봇·자율주행차처럼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를 승부처로 제시했다. 제조업·의료·건설 등에서 축적한 산업 데이터와 강점을 지닌 로봇 기술을 활용하면, 미국 기업이 앞선 범용 AI를 정면으로 뒤쫓지 않고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성장전략에는 2040년도까지 민관이 버티컬 AI에 23조 1000억 엔(약 211조7830억원), 피지컬 AI에 10조 5000억 엔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일본의 지난해 AI 분야 민간 투자액은 11억 1000만 달러(약 1조6500억원)로 세계 14위에 그쳤다. 미국의 2859억 달러(약 425조원)와 비교하면 2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이버 방어 체계도 강화한다. 일본 정부는 고성능 AI를 활용해 정부의 중요 정보시스템에서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취약점을 찾아내고, AI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정부 기관인 ‘AI 세이프티 인스티튜트’의 인력과 기능도 확충하기로 했다. 최신 AI에 조기 접근할 수 있도록 외국 정부기관 및 AI 개발기업과의 협력도 강화한다.
AI 사업자에 대한 처벌 규정 도입 가능성도 열어뒀다. 현행 AI법은 AI 악용으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됐을 경우 정부가 조사에 나서고 사업자에게 지도·조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업자를 처벌할 근거는 없다. 개정된 기본계획은 AI 위험에 실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AI법을 포함한 관련 제도를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재검토한다’고 명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개정이 조사에 불응하는 사업자에 대한 벌칙 신설 등 규제 강화의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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