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일단 이번 권력투쟁의 본격적인 시작은 검찰개혁 입법의 마무리 작업으로서 보완수사권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에서부터이다. 차기 총선 공천을 주도하기 위해 여당 대표 연임을 바라는 정청래 후보는 검찰개혁 실패로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고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같은 '괴물' 정권을 육성한 과오로 인해 검찰개혁에 한 맺힌 세력을 대표한다. 반면에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는 “검찰에 의한 수사권 남용은 막되 국민 불안은 해소”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완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이다. 보완수사권을 보완수사요구권으로 더욱 완화할 것이 제안되고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장윤기) 직후 완전폐지 반대여론이 61%로 급격히 악화되었음에도 ‘선명성파’는 줄곧 완전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보완장치”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경찰 수사권으로 충분하다”는 역제안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유 작가가 특유의 빠른 말투로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의 “필연적 실패”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 이후 연락을 주지 않았다는 소외감으로 표현하려는 권력서열화의 의도에서 출발한다. 대통령이 전화를 했더라면 지지하는 언행을 했을까? 가부에 상관없이 표현방식에서는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큰 상처를 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난다. 쌍방소통이 아니라 상대를 승복시키고 압도하려는 권력욕의 발로이다. ‘코어 지지층’이란 정의상 부동층이 다 떠나도 마지막까지 믿고 지지해주는 유권자층이다. 집권 1년 만에 지지를 철회한다는 것은 당초에 지지했는지조차 의심받을 수 있는 부동층일 뿐이다. 결국 “필연적 실패” 저주는 유 작가에 대한 이 대통령의 관심이 왜 적극적이지 않았는지 유 작가 스스로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유 작가가 “필연적 실패”의 근거로 들고 있는 ‘재건축론’은 이재명 정부에서 ‘선명성파’가 발탁되지 못하는 데 대한 집단적 소외감의 표출이다. 재건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배제된 재건축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배제되는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정치인 이재명이 대통령에 이를 때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마주한 위기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겼던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재명 개인에 대한 검찰 탄압이 곧 민주당에 대한 탄압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이재명은 도와주기 싫다”(정청래)면서 방관한 것은 정당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의 문제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속도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의 유일한 활로는 ‘발목잡기’가 아니라 ‘잘하기 경쟁’뿐이다. 이 대통령의 ‘선명성파’ 거리두기는 민주당의 외연확장일 뿐만 아니라 정당한 세대교체의 수순이다.
유시민/정청래 세력의 대통령 흔들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학생운동권’의 정치적 무용성이 다시 증명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성공적으로 진전될 뿐만 아니라 당권교체와 당정협력 강화로 성공이 가속화될수록 이는 곧 유시민/정청래 세력의 반(反)실용주의가 설 자리를 잃는 것과 같다. 반대로 대통령과 각을 세워온 정청래 전 대표가 재선에 성공하면 대통령이 지난 1년 내내 민주당에게 요구했던 “개혁입법의 신속한 통과”는 다시 물 건너 갈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대통령의 야심 찬 프로젝트인 호남 반도체 단지와 새만금 현대자동차 피지컬 AI 공장 추진 역시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고 호남의 저개발은 고착화될 수 있다. 호남의 사회경제적 불만은 지속될 것이고 개혁에 대한 요구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부정적 의미의 386스러운 이념정치가 온존되는 구도이다. 대통령의 호남반도체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출범한 시점에 유 작가가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명시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최근의 ‘유시민 현상’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반동적이다.
‘선명성파’가 중도확장에 보이는 거부감은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12·3 비상 계엄 사태 이후 민주세력이 당면한 과제는 당연히 내란세력의 척결이지만 그 범위를 획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윤석열과 내란범들을 사법처리하는 것, 내란에 동조하고 있는 정치세력을 정계에서 퇴출하는 것, 내란을 보다 광범하게 헌정질서 문란행위로 해석하고 이에 동참하는 세력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을 각각 단기, 중기, 장기과제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재명 대통령의 외연확장은 내란세력의 고립이다. 이러한 상황진단이 ‘선명성파’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오로지 이재명 대통령을 흔들어 국정동력을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 실패시킴으로써 자기만족을 실현하고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내란세력 고립의 해제이자 내란세력 척결의 거부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종파의 대외적인 의지표명과 상관없이 이재명 대통령 흔들기는 내란세력 부추기이다. “내란을 할 수도 있다”면서 거듭 윤석열에 보여주던 관대함과 이재명 대통령을 향하는 저주가 가지는 상통성은 그를 ‘진보의 지식인’이 아니라 ‘극우의 선동가’로 분류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유시민이 진중권이 되어가고 있다”는 일각의 평판은 절반만 맞다. 둘은 다르지 않다. 표출되는데 3, 4년의 시차가 있었을 뿐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본정서가 반감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유 작가의 반발은 대통령과의 대응관계 설정에서도 중대한 오류가 있다. 평론은 분석적이고 부분적이다. 정치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이다. 부분은 인식의 범위 안에서 대상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 해석하면서 조언할 수 있다. 전체는 부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동원해서 취합, 판단, 선택, 실천한다. 평론을 정치로 직접 연결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는 소통적 리더십에 기반하는 의사결정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평론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지만 전체의 담지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평론은 ‘뇌가 썩지 않는 한’ 평생 한다고 해서 탓하는 사람 없지만 정치에는 국민의 심판이 내려지는 임기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부터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국민주권 의식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유 작가의 독설은 – 미신 같지만 - 그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통령 감별사’, ‘마이너스의 손’으로 만들었다. 그와 뜻을 같이 했던 두 명의 민주당 대통령의 실패에서는 국민들에게 네거티브한 경험과 교훈을 전달해주었던 반면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미 평가받고 있거나 지금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욕설과 저주에 가까운 혹평을 배설함으로써 대다수 국민의 포지티브한 경험을 돋보이게 대비시키는 데 ‘자기희생적인’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소동으로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보증서를 발급한 셈이 되었다. “비린 내, 썩은 내”라는 실체 없는 비유로 상대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아무리 진지한 표정으로 위장해도 흑색선전일 뿐이다. 유 작가의 이러한 발언은 그의 ‘밑천’이 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동가는 공익과 국익에 충실한 정치인을 이기지 못하고 국민의 집단지성은 더욱 속일 수 없다. 선동에 면역력 있는 민주적 소통문화를 확립하고 일상화할 때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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