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엔화 사들인 미국, 28년 만의 미·일 공조 속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이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일본이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인 데 이어 미국 재무부도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엔화 매수에 나섰다.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한 미·일 공조는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달러당 164엔에 육박했던 엔화 환율은 개입 직후 150엔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직접 시장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그동안 각국의 인위적인 환율 개입을 시장 왜곡으로 비판해 왔다. 특히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행위에는 환율조작국 지정까지 거론했다. 그런 미국이 이번에는 엔화를 직접 사들였다. 엔저가 더 이상 일본만의 물가와 통화정책 문제가 아니라 미국 금융시장에도 부담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미 국채 시장이다. 일본은 1조 달러가 넘는 미 국채를 보유한 주요 투자국이다.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달러 자산을 대거 처분하면 미 국채가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오른다. 이미 재정 적자와 국채 발행 증가로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받는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대규모 국채 매각을 방치하기 어렵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금리를 끌어올리고,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도 키운다. 미국의 장기금리가 오르면 달러 강세가 다시 심해져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악순환도 생길 수 있다. 미국이 엔화 방어에 힘을 보탠 데에는 일본이 미 국채를 팔지 않고도 외환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자국 금리 불안을 막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엔저 방어지만, 속으로는 미 국채 시장 안정이 걸린 문제인 셈이다.

이번 공조는 환율 문제가 더 이상 개별 국가의 수출 경쟁력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한 나라의 통화 급락이 외환보유액 운용과 국채 매매를 거쳐 다른 나라의 시장금리까지 흔드는 시대다. 미국이 그동안의 원칙을 접고 직접 개입한 것은 그만큼 미 국채 시장의 불안이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시장 개입만으로 엔저의 뿌리를 없앨 수는 없다. 큰 폭의 미·일 금리 차와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이어지는 한 엔화 약세 압력은 되살아날 수 있다. 이번 공조는 환율의 방향을 영구히 돌리기보다 과도한 쏠림을 진정시키는 조치에 가깝다. 일본도 금리와 재정정책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미국의 지원에 계속 기댈 수밖에 없다.

한국도 이번 사태를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급격한 원화 강세 역시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떨어뜨리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요한 것은 특정 환율 수준을 지키는 게 아니라 경제 기초 여건과 무관한 급등과 급락의 반복을 막는 일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일본 등 주요국과의 환율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개입만으로 버티기보다 외화 유동성과 시장 신뢰를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번 미·일 공조는 환율이 무역 경쟁력뿐 아니라 국채 금리와 금융시장 안정까지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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