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열 보험연구원 보험연구위원
‘보험’이란 당사자 일방이 약정한 보험료를 지급하고, 재산 또는 생명·신체에 불확정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상대방이 일정한 보험금이나 그 밖의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계약을 말한다(상법 제638조). 한자로는 ‘保險’, 영어로는 ‘Insurance’라고 표기한다. Insurance의 사전적 정의는 우리가 사용하는 ‘보험’의 의미와 같다. 서양의 Insurance라는 개념을 우리가 수입하는 과정에서 이를 ‘인슈어런스’라고 쓰지 않고 ‘보험(保險)’이라는 단어로 옮겨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험이라는 말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서양의 보험 제도가 수입되기 전에도 중국이나 우리 옛 기록에서는 ‘험한 지역을 차지하다(의지하다, 지키다)’라는 의미로 보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수서 열전, 구당서 열전, 조선 선조실록 등). 물론 여기에서 보험은 우리가 아는 Insurance와는 무관하다.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수많은 개념과 단어를 번역했고, 이때 '자유(自由)' '권리(權利)' '사회(社會)'라는 말 등이 만들어졌다. 보험이라는 말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우리에게 등장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 보험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종 때이다. 1883년 일본과 체결한 조약인 조일통상장정 제5관은 적치화물 명세서를 말하는 ‘치화단’에 ‘보험비’가 기재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1888년 러시아와 체결한 조아육로통상장정 제5관과 1892년 오스트리아와 체결한 조오수호통상조약 세칙장정 제1관은 화물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값을 산정할 때 화물 자체 가격에 ‘보험등비’를 더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조선의 각종 문헌에서 보험이라는 단어가 자주 발견된다.
1883년 이전에 조선에 Insurance라는 개념이나 보험이라는 단어가 소개됐다는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조약 상대국인 일본에서는 Insurance 개념도 알고 있고, 보험이라는 단어도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에 Insurance 제도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은 근대 일본의 계몽운동가 겸 철학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서양사정' '서양여행안내' 등 책에서 Insurance를 설명하되 일본의 선배 난학자들에 따라 '청부(請負)' '청합(請合)' 등으로 번역했다. 후쿠자와 이후 일본에서 Insurance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는데 정작 번역어로는 보험이 청부나 청합을 빠르게 대체한다.
이는 '영화자전'이라는 책의 영향이다. '영화자전'은 중국에서 활동한 독일 선교사 빌헬름 롭샤이트가 1866년부터 1869년까지 출판한 방대한 분량의 영중사전으로, Insurance라는 표제어를 ‘보험’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 사전은 출간 직후 일본에서도 널리 읽혔고 일본의 근대 영일사전 편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롭샤이트가 '영화자전'을 저술할 때 중국 고전뿐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 신조어로 등장한 한자어까지 널리 참고로 했기에 혹시 ‘보험’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후 '영화자전'에 반영되고 이것이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특히 1816년 일본에서 편찬된 네덜란드어-일본어 사전인 '두프 하루마'에서는 Insurance와 뜻이 같은 네덜란드어 Verzekering을 ‘보험’이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자전'이 소개되기 전 일본에서는 청부, 청합이 널리 쓰였고 롭샤이트가 보험이라는 단어를 쓸 때 일본의 자료를 참고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상무역이 발달한 중국 남부에서는 롭샤이트 이전에도 Insurance를 담보, 보험 등으로 번역했고 서양의 보험 제도가 소개된 것도 중국이 일본에 앞선다.
요컨대 Insurance에 대한 썩 괜찮은 번역어인 보험(保險,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다)은 186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어느 독일인 선교사가 수집・정리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도 ‘보험’이 10여 년 만에 기존 용어를 밀어내고 사용됐으며, 늦어도 1883년에는 우리에게도 소개됐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험이란 말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양의 보험 제도가 수입되기 전에도 중국이나 우리 옛 기록에서는 ‘험한 지역을 차지하다(의지하다, 지키다)’라는 의미로 보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수서 열전, 구당서 열전, 조선 선조실록 등). 물론 여기에서 보험은 우리가 아는 Insurance와는 무관하다.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수많은 개념과 단어를 번역했고, 이때 '자유(自由)' '권리(權利)' '사회(社會)'라는 말 등이 만들어졌다. 보험이라는 말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우리에게 등장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 보험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종 때이다. 1883년 일본과 체결한 조약인 조일통상장정 제5관은 적치화물 명세서를 말하는 ‘치화단’에 ‘보험비’가 기재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1888년 러시아와 체결한 조아육로통상장정 제5관과 1892년 오스트리아와 체결한 조오수호통상조약 세칙장정 제1관은 화물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값을 산정할 때 화물 자체 가격에 ‘보험등비’를 더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조선의 각종 문헌에서 보험이라는 단어가 자주 발견된다.
1883년 이전에 조선에 Insurance라는 개념이나 보험이라는 단어가 소개됐다는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조약 상대국인 일본에서는 Insurance 개념도 알고 있고, 보험이라는 단어도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에 Insurance 제도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은 근대 일본의 계몽운동가 겸 철학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서양사정' '서양여행안내' 등 책에서 Insurance를 설명하되 일본의 선배 난학자들에 따라 '청부(請負)' '청합(請合)' 등으로 번역했다. 후쿠자와 이후 일본에서 Insurance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는데 정작 번역어로는 보험이 청부나 청합을 빠르게 대체한다.
그런데 롭샤이트가 '영화자전'을 저술할 때 중국 고전뿐 아니라 당시 일본에서 신조어로 등장한 한자어까지 널리 참고로 했기에 혹시 ‘보험’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후 '영화자전'에 반영되고 이것이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특히 1816년 일본에서 편찬된 네덜란드어-일본어 사전인 '두프 하루마'에서는 Insurance와 뜻이 같은 네덜란드어 Verzekering을 ‘보험’이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자전'이 소개되기 전 일본에서는 청부, 청합이 널리 쓰였고 롭샤이트가 보험이라는 단어를 쓸 때 일본의 자료를 참고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상무역이 발달한 중국 남부에서는 롭샤이트 이전에도 Insurance를 담보, 보험 등으로 번역했고 서양의 보험 제도가 소개된 것도 중국이 일본에 앞선다.
요컨대 Insurance에 대한 썩 괜찮은 번역어인 보험(保險,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다)은 186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어느 독일인 선교사가 수집・정리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도 ‘보험’이 10여 년 만에 기존 용어를 밀어내고 사용됐으며, 늦어도 1883년에는 우리에게도 소개됐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험이란 말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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