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블랙핑크 지수 'T 모먼트'…같이 울어줘야 공감일까?

  • 인지적·정서적 공감, 집단 편향, 지각된 상대방 반응성으로 본 공감의 두 얼굴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블랙핑크 지수가 때아닌 'T 모먼트'(공감보다 현실적인 판단이나 문제 해결이 먼저 나오는 반응을 가리키는 밈 표현)를 해명했다.

30일 공개된 W코리아 유튜브 영상에서 지수는 2023년 미국 코첼라 공연 직후의 한 장면을 돌아봤다. 역사적인 무대를 마친 멤버들이 벅찬 감정에 눈물을 흘리는 사이 지수는 "블랙핑크야, 사진 안 찍을 거지? 나 옷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감동의 여운을 단숨에 현실로 끌어내린 이 장면은 이후 지수의 '대문자 T 모먼트'로 회자됐다.

지수의 설명은 달랐다. 공연이 끝났는데도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고, 다음 행선지인 LA로 이동해야 했다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T 모먼트는 아니다"라고도 선을 그었다.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지수의 행동이 밈으로서 'T 모먼트'로 불린 맥락은 분명하다. 모두가 감정에 젖어 있을 때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챙겼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말에는 종종 차갑다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까지 따라붙는다. 함께 울면 따뜻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차갑다. 고민을 듣고 "힘들었겠다"고 하면 F,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건데?"라고 물으면 T라는 식이다.

하지만 밈으로서의 'T 모먼트'와 실제 MBTI의 T를 공감 능력과 연결하는 건 다른 문제다.

본래 MBTI의 T와 F가 '얼마나 감정을 잘 느끼느냐'를 나누는 지표는 아니다. 마이어스·브릭스 재단은 T와 F를 의사결정 방식의 차이로 설명한다. T는 논리와 객관적 원칙에, F는 개인적 가치와 관계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는 선호다. 누구나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검사 점수 역시 능력의 강도를 뜻하지 않는다.

문제는 T인지 F인지가 아니라, 내가 익숙한 반응 방식을 공감의 정답으로 여기는 데 있다.

공감도 들여다보면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2011년 레나테 레니어스와 동료 연구자들은 '인지·정서적 공감 질문지'(QCAE)를 개발하면서 공감을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으로 구분했다. 상대의 관점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감정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건 서로 연결돼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누군가의 슬픔에 함께 울고,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다. 그것 역시 공감의 한 모습이다. 다만 정서적으로 함께 반응하는 것만으로 공감의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과 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구분되기 때문이다.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공감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감하지 않는다.

영국 킬대학교 마크 태런트와 동료 연구자들은 2009년 발표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힘든 일을 겪었다는 다른 학생의 이야기를 제시했다. 이 학생이 자신과 같은 대학 소속이라고 소개됐을 때, 다른 대학 학생이라고 했을 때보다 참가자들은 더 강한 공감과 도움 의사를 나타냈다. 후속 실험에서는 다른 집단 사람에게도 공감해야 한다는 규범을 제시하자 외집단을 향한 공감 역시 높아졌다.

이런 편향은 일상에서도 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가 되고, 싫어하는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원래 저런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의 불안은 상처로 읽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불안은 유난이나 핑계로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공감 능력이 높다'는 말도 조금 조심해서 쓸 필요가 있다. 특정 사람의 감정에 쉽게 빠져드는 것과,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한 발 물러나 이해하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감이 선택적일 순 있다. 사람이니까. 문제는 그 선택을 인식하지 못한 채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포장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매도할 때다.

여기에는 공감과는 또 다른 문제가 섞여 있다. 바로 수용이다. 공감이 상대의 감정이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수용은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저 사람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다.

가령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지만 왜 저랬는지는 이해한다"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용한 경우다. 공감과 수용은 겹칠 수 있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공감을 잘한다는 F들은 왜 공감 못 하는 T에게는 공감을 안 해주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면 여기에는 공감과 수용이 함께 얽혀 있다. 상대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공감의 문제고, 나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차갑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면 수용의 문제다.

 
공감 능력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델 주우재 사진유튜브 채널 깡시안 영상 캡처
'공감 능력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델 주우재 [사진=유튜브 채널 '깡시안' 영상 캡처]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공감하는지 여부에 이토록 예민할까. 한 가지 단서는 관계에서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심리학에서는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신경 쓰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지각된 파트너 반응성'으로 설명한다. 2010년 미시간대 에이미 카네벨로와 제니퍼 크로커는 대학 신입생 룸메이트 115쌍을 한 학기 동안 추적하고, 별도로 65쌍을 3주간 조사했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반응은 관계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호 반응성은 관계의 질 향상과도 연결됐다.

이런 연구를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요구하는 '공감'에는 감정의 이해뿐 아니라 "나는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관계적 욕구도 섞여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왜 공감을 안 해줘?"라고 말할 때도 반드시 "왜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만을 뜻하지는 않을 수 있다. "나는 네 감정을 받아주는데 너는 왜 내 감정을 받아주지 않느냐", "내가 중요하다면 이 정도 반응은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기대도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이해보다 리액션이 중요해진다. 내가 기대한 표정을 짓지 않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고, 원하는 타이밍에 위로하지 않으면 어느새 상대에게 'T 차압 딱지'가 붙는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는 냉혈한이 되는 것이다.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블랙핑크 멤버 겸 배우 지수 [사진=유튜브 채널 'W KOREA' 영상 캡처]

하지만 상대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이해했지만 다르게 반응하는 것, 내가 원하는 표현을 해주지 않는 건 모두 다른 문제다. 이 차이를 지워버리면 공감 능력은 타인의 반응을 채점하는 기준이 된다.

상대를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에도 정작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려는 일을 멈출 수도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공감하거나 이해하기는 쉽다. 더 어려운 일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곧바로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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