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미조 감독 "유머러스함은 내 강점…'경주기행',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죠"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데뷔작 '갈매기'로 국내외 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김미조 감독이 첫 상업영화 '경주기행'을 내놓았다. 사적 복수라는 무거운 소재 위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 가족 드라마라는 장르를 묵직하게 엮어내며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연기 구멍 없는 베테랑 배우들의 촘촘한 앙상블, 저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면면과 웃음과 슬픔, 섬뜩함을 능숙하게 오가는 완급 조절까지. 영화가 지닌 밀도 높은 완성도는 결국 김미조 감독의 단단한 연출력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는 가족극이잖아요. 이 가족이 마치 군대처럼 같은 옷을 입고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옥실이 우두머리이고, 단합된 집단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남들이 봤을 때는 한마음 한뜻으로 복수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 안의 상처들이 나오면서 가족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집단으로 모였던 가족이 한 명 한 명 자기 마음을 꺼내면서 개인으로 해체되는 이야기라고 봤어요."

작품의 배경이 된 경주는 단순한 로케이션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풍경, 팽팽한 긴장과 일상이 교차하는 그 이질적인 감각은 감독이 2014년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서 비롯됐다.

"2014년 영화를 시작 할 때 가족들과 경주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어릴 때는 경주가 수학여행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돼서 가보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무덤 옆에 빨랫줄이 널려 있고, 가정집이 있었어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러니가 매력적이었어요. 그러다 가족들과 파란 우비를 입고 대릉원 옆을 걸었는데 문득 '사람 하나 죽이고 내려오는 비주얼인데?' 싶더라고요. 사진 한 장을 찍었는데 그 이미지가 '경주기행'의 시작이었어요."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서사 속에서도 김 감독은 어느 한 캐릭터도 허투루 소모하지 않았다. 베테랑 배우들이 포진한 현장에서 각자의 몫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연출자로서 중요한 책임이었다.

"인물이 많다 보니까 자칫하면 누군가는 도구적으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고 모든 캐릭터에게 '키 신'을 하나씩 주고 싶었어요. 배우분들이 워낙 쟁쟁하게 캐스팅됐잖아요. 이분들을 모셔놓고 '이렇게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배우들의 앙상블이 무조건 돋보이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각자의 중요한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영화 '경주기행'은 참혹한 비극을 마냥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넘나들고 허물며 '경주기행'만의 색깔을 공고히 한다. 이 같은 태도는 감독의 일상과 시선이 자연스레 스며든 결과물이기도 했다.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유머러스하세요.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큰 유산이 비극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는 유머러스함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 분위기 자체가 그래요. 저는 '경주기행'이 곧 저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담길 수밖에 없었어요. 복수를 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복수 과정에서 이들이 과연 복수만 하려고 할까? 배고프지 않을까? 화장실도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얹히면서 블랙코미디가 된 것 같아요."
영화 경주기행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전반에는 가족을 잃은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사회적 참사의 기억이 흐른다. 김미조 감독과 동시대를 살아온 관객들 역시 알고 있는 아픈 '비극'이기도 했다.

"제가 보고 들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씨랜드 사건, 대구 지하철 사고, 이태원 참사, 9·11 테러까지. 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는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그 이후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늘 궁금했어요. 그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웃음과 비극, 장르와 현실이 충돌하는 현장은 철저한 계산과 조율이 필요한 곳이었다. 김 감독은 "가장 큰 고민은 영화의 톤 조절"이었다며 수많은 테이크와 후반 작업을 통해 작품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다고 말했다.

"단편 때부터 블랙코미디나 드라마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장르적으로 확장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글을 쓸 때는 상상으로 가지만 배우분들의 연기를 만나면 결이 달라져요. 그래서 선배님들과 테이크를 많이 갔어요. 과한 버전, 현실적으로 낮춘 버전들을 찍었어요. 영화는 장면을 나눠 찍지만 관객은 이어서 통으로 보잖아요. 감정선이 따로 놀면 수습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후반작업에서도 '이 영화 뭐야, 짬뽕이야?'처럼 보일까 봐 고민이 컸고요. 음악감독님과는 나중에 '여기는 비극 70%, 희극 30%' 같은 식으로까지 소통했어요. 컷을 자르고 붙이면서 계속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옥실의 선택과 결말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겨냥하지 않는다. "가슴 속 불덩이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관객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안기고자 한다.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용서하면 다 해결되는 걸까. 용서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걸까. 그게 늘 궁금했어요. 옥실은 남편과 딸을 잃은 사람이잖아요. 그 큰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위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가는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 그 사람은 어떤 상태일까가 궁금했어요. 옥실의 가슴에 있는 불덩이가 그렇게 해야 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백상현에게 하는 '너를 용서할까 봐 무서웠어'라는 말이 핵심이라고 봤어요. 옥실에게는 용서하지 않는 것이 경주와 남편에 대한 마음을 갚는 방식이라고 믿는 것 같았어요."

복수의 과정에서 딸들이 떠나가고 옥실이 홀로 백상현과 마주하게 되는 건 초고부터 흔들리지 않았던 핵심이었다.

"초고 때부터 옥실이 혼자 단독으로 범행하는 구조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여러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엄마가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범죄자가 되는 길을 택할까'였어요. 그 부분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한다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끝까지 해낸다는 것이었어요. 딸들은 자기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옥실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결국 옥실이 면대면으로 백상현과 마주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경주기행' 김미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미 등장하는 옥실의 재판 장면을 페이드아웃으로 처리한 건 김 감독의 측은지심이기도 했다. 그는 '옥실'이라는 인물에게 따스한 시선, 희망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부분을 제가 결론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페이드아웃했어요. 제 희망을 말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옥실 역시 '법의 선처'를 받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과 영화 안에 표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엄벌주의와 선처 사이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엇어요. 누군가는 계속 울고 있고, 상처 입은 가족들이 있으며, 그 가족이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하려고 했어요."

묵직한 사회적 질문과 장르적 재미를 동시에 품어낸 김미조 감독의 시선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뼘 더 넓어졌다. 내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타인과의 공감으로 확장된 이 여정은 감독에게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중한 이정표가 됐다.

"저는 그동안 영화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생각보다 제가 궁금한 이야기를 제가 보고 싶어서 만든 경우가 컸어요. 그런데 '경주기행'은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궁금해할 이야기를 고민하면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갈매기' 때는 시스템 안에서 저항하는 인물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보고 싶었고, '경주기행'은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비극적인 여정을 함께하면서 서로 붕괴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는 이야기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관심사가 바뀌듯이 화두도 계속 옮겨갈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할 때 해소감이 많이 들거든요. '경주기행'을 마치니 가족 이야기 다음 또 다른 화두로 넘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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